“하모, 하모(그럼, 그럼).”
한국 나이로 여든인 정기석씨는 지난 1년간 농사가 잘됐느냐는 질문에 “벼도 잘 자라고 전기도 잘 만든다”며 경상도 사투리로 연신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민간 발전사인 한국남동발전, 태양광 설비를 구축하는 중소기업 KLES, 경상대 농대와 함께 농민 주도 민관공학 협업체계 사업을 진행했다. 경남 고성군에 있는 정씨의 논 약 6611㎡(2000평) 중 절반은 4m 기둥을 세워 100㎾급 태양광 패널을 장착했다. 패널 아래엔 운광벼(조생종), 새누리벼(중만생종)를 심었고 이앙기와 트랙터가 오갔다. 바로 영농형 태양광 발전이다. 논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상부에는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것으로, 농가는 농사 수익과 전력 판매 수익을 함께 거둘 수 있다.
영농태양광처럼 재생에너지는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농가 등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청년 창업가와 중소기업 육성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재생에너지, 지역경제에 기여하다
정씨의 농지 중 나머지 절반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지 않고 같은 종의 벼를 심었다. 태양광 패널 밑에서도 벼가 제대로 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쌀의 익은 정도(등숙률)나 하얀 정도(백도)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기둥 등 구조물로 농지가 줄면서 수확량은 일반 농지의 82% 수준이었다. 대신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면서 연 수익 2800만원을 올렸다. 설비비나 유지보수비, 감가상각을 제외한 순수익은 1100만원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농가 참여형 태양광발전소’를 지난해 6월 준공했다. 1988㎡ 부지에 73.125㎾ 용량의 발전소를 설치했고 지난해 수확량 검증 결과 일반 농지 대비 86%의 수확률을 기록했다. 발전사들이 단순히 농지에서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3월 경북 영덕군과 마을형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있고, 강원도 동해시 하수종말처리장엔 유휴 부지를 활용해 해파랑길 햇빛발전소를 세웠다.
일자리를 만들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세계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고용은 2012년 714만명에서 2016년 982만명으로 늘어 연평균 8.3%씩 성장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산업의 고용유발 효과는 화석연료산업보다 높았다. 태양광과 같은 규모의 천연가스나 석탄 발전보다 2배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너지공단은 우리나라도 2015년 신재생에너지 분야 고용이 2007년(3500여명) 대비 4.6배 증가한 1만6000여명으로 분석했다. ‘재생에너지 3020’을 추진하면 매년 관련 산업에 약 6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봤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1㎿ 태양광은 9.45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동서발전은 풍력과 태양광 패널의 안전 점검을 위해 드론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했다. 시설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거나 태양광 패널을 청소하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정씨의 논에 태양광 패널 구조물을 설계한 KLES라는 중소기업은 사업 과정에서 태양광 설비의 최적화, 전력설비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남부발전은 2019년까지 부산지역 내 공공시설, 주차장 등에 총 30㎿ 규모의 태양광을 개발해 대학생 창업가 100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환경 훼손·부동산 투기… 과제는 많다
재생에너지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지난 3일 경북 청도군에선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태양광 발전 설치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태양광 발전은 2016년 개발 허가를 받아 지난해 4월부터 사용을 시작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정책 전환에 나서면서 산지 등 환경 훼손, 입지 갈등,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올 초부터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지책을 마련했다. 임야에 설치하는 산지 태양광의 발전 사업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축소하고 태양광 산지 일시사용 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업자는 태양광을 설치한 뒤 산림으로 원상복구해야 한다. 발전 사업을 허가받으려면 주민에게 사업 내용을 사전에 알려야 하고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해야 한다. 산사태를 계기로 임야 태양광 전수조사에도 들어갔다.
▒ 한국남동발전 유향열 사장
“대규모 해상풍력·수상태양광 활용에 초점”
“저희는 3025입니다.”
한국남동발전 유향열 사장은 10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사업 계획을 묻자 한마디로 이같이 설명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를 달성하겠다는 ‘3020’ 비전을 제시한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 사장은 재생에너지원 개발 포트폴리오를 대규모 해상풍력과 수상태양광 중심으로 잡았다. 국토의 입지 여건을 극복하면서도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 국산해상풍력단지인 ‘탐라해상풍력’을 준공했고 서남해안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대규모 해상풍력사업의 입지 선점과 사업권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유 사장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지역주민과의 상생, 일자리 창출, 국산 기술 개발이다.
유 사장은 “완도해상풍력은 600㎿급 수산업 공존형 사업 모델로 완도군과 지역주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 산단 유수지를 활용한 18.7㎿급의 국내 최대 규모 군산수상태양광도 준공을 앞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순수 국산 기술과 자재를 이용했다”고 소개했다.
유 사장은 남동발전만의 일자리 만들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5%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투자 6조원을 포함해 총 25조원 6.7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직간접 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6만7620명의 건설단계 고용유발 효과와 함께 설비 운영에 필요한 1500명 이상의 추가 인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군산수상태양광만 해도 공장 근로자 100여명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소는 규모는 커도 기계로 돌아간다”면서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소규모라 사람의 관리가 필요해 그만큼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동발전은 중소기업과 기술 개발을 함께 추진한다. ‘10㎾급 부유식 풍력터빈 시스템 개발 및 실증’ ‘해상 환경에서 적용 가능한 태양광 모듈 및 시스템 개발’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청년벤처 사업가와 ‘VPP(가상발전소) 솔루션 기술 개발 및 실증’사업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 사장은 “재생에너지는 발전사 홀로 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25% 달성을 위해 지역주민이나 중소기업, 청년 창업가와 상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에너지 정책 전환, 세상을 바꾼다] 태양광 발전, 일자리 만들고 농가 소득 ‘일석이조’
입력 2018-07-11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