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9%와 3.0% 사이, 고민 커지는 정부

입력 2018-07-10 04:04

‘2.9%’와 ‘3.0%’ 사이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소폭(0.1% 포인트) 하향조정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아서다. 실제로 곳곳이 ‘지뢰밭’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주력 수출산업의 타격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고,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둔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성장률 전망치 수정에 뒤따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똥이 ‘소득주도 성장 책임론’으로 튈 수 있다. 성장엔진을 달궈줄 혁신성장은 아직 성과를 기대하기 이르다.

기획재정부는 다음 주에 있을 ‘2018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를 앞두고 지난해 내놓은 각종 경제전망 지표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관건은 정부가 제시했던 올해 국내총생산(GDP) 3.0% 성장이라는 목표를 유지하느냐다. 소비·투자·정부지출·수출이 증가할수록, 수입·세금이 줄어들수록 GDP 성장에 좋다.

그러나 GDP를 결정하는 각 요소가 ‘복병’을 안고 있다. 지난해 경기 회복세를 이끌었던 수출은 미·중 무역전쟁 발발로 ‘바람 앞 촛불’ 신세다.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이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기준으로 각각 26.5%, 11.4%나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무역전쟁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한국이 31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투자는 조정기에 들어서면서 감소 흐름을 타고 있다. 지난 5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 4.1% 줄었다. 지난해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설비투자가 이뤄졌지만 올해부터 둔화되는 모양새다. 소비는 살얼음판이다.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여부가 최대 변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이후 연 1.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0.5% 포인트로 벌어져 외국인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올리면 그나마 회복되던 소비 지표는 고꾸라질 수 있다. 예상보다 많이 걷히는 세금도 GDP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가 상반기에 3조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집행했지만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대 후반으로 잡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9일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는 방향까지 열어놓고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스스로 전망치를 내리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정부 경제팀은 지난해 소득주도 성장을 통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외치면서 성장률 3%라는 낙관적 숫자를 제시했다. 3%라는 마지노선에서 후퇴할 경우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된다. 정부 경제정책에 공격이 집중될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제시하는 전망치는 ‘숫자’를 넘어 ‘정부의 의지와 목표’로 기능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가뜩이나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영향으로 위축돼 있는 상황인데 성장률 전망까지 낮추면 정부가 올해 경제 성장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옮기고 있다. 기재부 방기선 정책조정국장은 “이달 말까지 10∼20개의 규제혁신 내용을 담은 리스트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안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