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처음 선보인 금융감독혁신 과제는 ‘소비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에서 더 나아가 국민 눈높이에 맞춘 소비자 권익 보호에 힘쓰겠다는 취지다.
다만 금융회사들은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언급한 윤 원장의 발언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금융회사의 전체 업무를 훑는 종합검사의 부활로 업무 부담이 늘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윤 원장이 9일 발표한 혁신 과제에는 ‘키코(KIKO·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약정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 사건의 원점 재검토’부터 ‘금융감독 패러다임 변화’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큰 줄기는 소비자 보호다. 윤 원장은 “단기적으로는 감독이 강화될 것”이라며 “금융사고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부분에선 금감원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 금감원은 최근 불거진 대출금리 부당부과와 관련해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선다. 조작이 발견되면 환급 조치를 한다. 경영진 제재 근거를 마련해 제재하겠다는 방침도 명확히 했다. 특히 저소득층 및 자영업자에게 과도한 금리를 부과하는지 들여다본다. 윤 원장은 대출금리 조작 사례가 1만건 넘게 적발된 경남은행에 대해 “(직원들의) 단순 일탈로 보기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자의 위험도(리스크) 대비 과도한 대출금리를 부과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 근거도 마련한다. 저축은행 등의 경우 대출금리 원가 등을 공개해 고객 평가를 유도한다.
또 불완전 판매를 뿌리 뽑을 방침이다. 금감원은 고객들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는 불완전 판매를 ‘금융회사의 갑질’로 규정했다. 금감원 전체 검사 인력의 60% 이상을 불완전 판매 등 영업행위 검사에 투입한다. 윤 원장은 “감독 역량의 많은 부분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9월 중에 전 금융권에서 팔고 있는 특정금전신탁, 주가연계증권(ELS) 일제점검도 실시한다. 고령층에 고위험 투자 상품을 권유했는지 등을 들여다본다. 일정 기간 특정 금융상품에서 다수의 민원이 발생했을 경우 소비자에게 자동 공시하는 시스템도 내년 중에 마련한다. 잇따라 부실 사고가 터진 P2P(개인 간 금융거래)대출의 이용자 보호도 강화한다. 9월까지 P2P연계 대부업자 전수조사를 마무리한다. P2P업체의 임직원 수 등 정보 공시도 강화한다.
이미 발생한 금융 민원들에 대한 대응도 강화한다. 키코 사태와 관련해 피해기업을 상담하고 사실관계를 원점 재검토한다. 필요하면 현장검사도 해 지원방안을 적극 마련키로 했다. 키코 사태는 2008년 키코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이 환율 급등으로 3조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던 사건이다. 금감원은 키코 피해기업을 위한 분쟁조정국·검사국 합동 전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도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암보험, 즉시연금을 둘러싼 분쟁에서도 업계가 전향적으로 소비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오는 4분기에 금융회사 종합검사가 3년 만에 부활한다. 특정 사안이 터지면 검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보호 등에 힘쓰지 않은 금융회사를 선별해 실시하는 방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종합검사는 결국 금융회사의 고삐를 죄겠다는 것이다.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종합검사는 금융감독의 마무리라는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취약계층과 서민을 위한 금융지원도 강화된다. 하반기 중에 저소득·저신용자의 소득, 신용등급 등을 분석해 맞춤형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영세 카드가맹점 지원을 위해 카드가맹점 대금 지급 주기를 결제일로부터 2영업일에서 1영업일로 줄인다.
윤 원장이 빼든 칼에 금융업계는 부담 증가를 우려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본다. 증권사 관계자는 “주요 금융회사는 이미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추세였다. 어느 정도 예상된 범위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번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계기로 금융회사들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금융이 낙후됐던 이유는 금융회사들이 위험관리에 소홀하고, 은행들은 전당포식 영업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라며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면 금융회사들도 첨단 금융노하우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임주언 기자 naa@kmib.co.kr
모든 은행 대상 대출금리 조작 여부 조사
입력 2018-07-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