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직속 조직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첫 저출산 종합대책을 내놨다.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출산율 높이기’에서 ‘20∼40세대 삶의 질 높이기’로 전환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세부 대책은 지난 정부의 것을 재탕했다는 평가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5일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저출산 대책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정부는 출산율이나 출생아 수를 늘리는 데서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요 정책은 대부분 출산과 육아에 혜택을 더 주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는 먼저 자영업자와 특수고용인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 출산휴가급여를 150만원씩(월 50만원씩 90일간) 지급하기로 했다. 보험설계사와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신용카드 모집인, 택배·레미콘 기사 등 약 5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 1세 미만 영아를 둔 부모의 의료비 부담도 ‘사실상 제로화’ 수준으로 줄어든다. 고위험 산모의 비급여 입원 진료비 지원 대상 질환도 5개에서 11개로 늘어난다.
만 8세 이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하루 1시간씩 최대 2년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최대 근로시간 단축 기간이 1년인 탓에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사용한 근로자는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없었다. 아내의 출산 시 남편이 쓸 수 있는 출산휴가도 현재 ‘유급 3일+무급 2일’에서 유급 10일로 바뀐다. 이밖에 아이돌봄서비스도 지원대상이 확대돼 2022년까지 18만명(현재는 9만명)이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지원 폭이 다소 늘어났을 뿐 현실적인 저출산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결혼한 김모(31·서울 동작구)씨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는 이번 대책이 도움이 되겠지만 인력난이 심한 소규모 회사의 직원들은 눈치가 보여 도저히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위원회 관계자는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당장 급한 출생아 수 30만명대 지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신선한 대목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한부모나 부부에 대한 지원이다. 정부는 한부모 양육비 지원액을 인상하고 주민등록표상 계부·계모 표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사실혼 부부에게도 난임시술 건강보험 혜택을 줄 계획이다. 위원회는 “비혼 출산·양육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야기하는 불합리한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원회가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사회를 재구조화하려면 장기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조효석 기자 Isaiah@kmib.co.kr
출산율 높이기’에서 ‘삶의 질 높이기’로 바꿨지만, 대책은 재탕
입력 2018-07-06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