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에는 월드컵공원이 있다. 경기장과 강변북로 사이 평화의공원, 한강둔치의 난지한강공원, 산 위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상암 주택가 쪽의 난지천공원 등 5개의 테마공원으로 이뤄져 있다. 총 면적이 3195만㎡에 달한다. 공원이 부족한 서울 서부지역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하늘공원은 억새와 띠, 자생·귀화종 화초들이 자라고 있는 초지(草地)공원이다. 이곳에 오르면 북한산과 남산, 여의도 고층빌딩, 행주산성, 한강 등이 훤히 보인다. 가을이면 만개한 억새가 출렁대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노을공원은 캠핑장과 파크골프장,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형형색색의 텐트와 타프를 설치해 놓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평화의공원과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도 언제라도 부담 없이 찾아 마음에 쉼표를 얻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공원이지만 이곳은 20여년 전만 해도 쓰레기 더미가 산을 이루던 곳이었다. 과거 난초(蘭)와 영지(芝)가 합쳐진 난지도로 불렸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으나 1978년 3월부터 쓰레기매립장으로 쓰이면서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와 건설폐기물, 하수슬러지 등이 트럭에 실려와 이곳에 버려졌다. 폐쇄되기 전 15년 동안 반입된 쓰레기는 8.5t 트럭 1300만대 분량이었다. 매일 연 2000여대의 트럭이 드나들며 쏟아부은 쓰레기가 무려 9197만2000㎥나 된다. 정상이 평평한 사다리꼴 육면체 형태의 거대한 산 2개는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당초 국제기준에 맞춰 최대 45m 높이까지만 매립하려 했으나 대체 매립지 조성이 늦어지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98m, 94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됐다.
난지도쓰레기매립장은 서울의 감추고 싶은 치부였다. 김포수도권매립지가 조성돼 서울의 쓰레기가 그곳으로 반입되면서 1993년 3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지만 매립장은 흉물이었다. 먼지가 날리고,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었다. 주변 지역 지하수와 토양 오염도 심각해졌다. 폐쇄 후 침출수와 매립가스 처리, 상부 복토 등 안정화사업이 진행됐지만 성산동 아파트촌까지도 냄새가 퍼져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곳에 희망이 싹텄다. 90년대 후반 인근 지역이 월드컵경기장 부지로 결정된 것이 계기였다. 매립지 일원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이 수립됐고 2000년 착공해 2002년 4월 난지천공원을 시작으로 속속 테마공원들이 개장됐다. 주로 생활쓰레기를 매립했던 제1매립장에 조성된 노을공원은 처음엔 대중골프장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재조성됐다. 6월 공원에 어둠이 내리면 산란기를 맞아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 맹꽁이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월드컵공원에는 1400종이 넘는 동식물이 깃들어 살아가고 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려면 한참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죽음의 땅이 인간과 자연을 품어주는 생명의 땅으로 거듭난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월드컵공원은 환경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경이로운 공간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논설실에서] 생명의 땅, 월드컵공원
입력 2018-07-07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