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산업들이 중국의 거센 추격에 노출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디스플레이 등 한때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던 산업들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기술 따라잡기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확고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산업이 메모리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다.
하지만 반도체산업에도 중국발 경고음이 연이어 울리고 있다. 반도체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 공정 업무에 종사하거나 경력이 있는 핵심 인력에 대한 중국 업체들의 손길이 갈수록 치밀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핵심 인력들에게 현재 연봉의 5배를 주고 최소 5년간 근무 조건을 내걸며 이직을 권유한다고 한다. 최소한 25년치 연봉을 주겠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학비와 주거비 지원도 별도로 주어진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합병을 제안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기술과 핵심 인력에 대한 집착이 무서울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중국 기업들의 뒷배는 중국 정부다. 2014년 반도체 육성 정책을 공식화한 중국 정부는 이듬해엔 2025년까지 1조 위안(177조원)의 반도체산업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13.5%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굴기(산업의 부흥)를 위해 민·관 합동으로 총공세에 나선 셈이다. 중국이 합법적인 수단만 동원할 것이라고 볼 게 아니다. 기술절취가 급증하는 대만 사례는 반면교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중국 업체들이 애플 퀄컴 등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만 반도체 인력들에 대한 공격적인 유치에 나섰을 뿐 아니라 기술 절취를 광범위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에서 기술 절취로 기소된 건수는 지난해 21건으로 4년 새 배 이상 늘었다. 이 중 90%가 중국 기업들의 소행이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의 위치는 주력 정도가 아니라 핵심이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 중 17.4%가 반도체다. 올해는 그 비율이 더 높아져 20%를 넘어섰다. 특히 다른 주력 산업들이 구조조정에 실기해 고투를 벌이면서 반도체산업의 약화는 경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그동안 반도체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다는 이유로 연구·개발 촉진, 기술인력 지원 등 정부 정책이 멈춘 지 오래다. 이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공지능(AI) 전용 반도체 기술은 심지어 중국에도 뒤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 부족 현상도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한국 반도체 따라잡기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기술 절취 시도에 대한 경계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사설] 중국의 집요한 반도체 굴기… 범정부 대책 세워라
입력 2018-07-03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