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1일(현지시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 좌파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5)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중남미에선 드물게 우파가 장기집권해 온 멕시코에서 89년 만에 좌파 정권이 수립될 전망이다.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계기로 중남미 국가들이 ‘핑크 타이드’(1990년대 말∼2000년대 남미 국가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현상)의 부활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밤 공개된 대선 예비개표 결과 국가재건운동(MORENA)과 노동자당(PT) 등 좌파정당 연합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연대 후보 오브라도르의 득표율이 53∼53.8%로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예비개표 결과는 15만6000여개 투표소 중 7000여곳을 무작위 추출해 개표한 것으로,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사실상 당선을 확정짓는 절차다.
경쟁 후보인 중도우파 국민행동당(PAN)·중도좌파 민주혁명당(PRD) 연합 후보인 리카르도 아나야는 19∼25%, 집권당인 중도우파 제도혁명당(PRI)의 호세 안토니오 미드 후보는 14∼20%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후보는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
‘멕시코의 좌파 트럼프’로 불리는 오브라도르는 부정부패 척결을 주창하는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인연금 확대, 비료 무상공급, 정치인 급여 삭감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 정치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오브라도르는 20대 초반 멕시코 타바스코주의 가난한 원주민 ‘촌탈 마야(Chontal Maya)’족과 함께 일하며 불평등에 눈을 떴다. 1976년에는 제도혁명당(PRI)에 입당해 현실 정치를 시작했다. 선거에 계속 나선 그는 2000년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서만 승리했다.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선 연달아 낙선했다.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오브라도르가 정권을 잡은 배경에는 변화를 원하는 멕시코 국민들이 있다. 국민들은 보수우파 정권의 부정부패와 경기침체, 높은 살인율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대통령 관저에 거주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신용카드도 없는 그의 소탈함에 국민들이 매력을 느꼈다는 평가도 있다. 오브라도르는 풀네임의 머리글자를 따 암로(AMLO)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오브라도르의 당선으로 미국과 중남미 경제규모 2위 국가인 멕시코 간 무역과 이민, 국경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는 지난해 저서 ‘들어라 트럼프(Listen Trump)’를 펴내 트럼프와 각을 세울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가 마약과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막지 않으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할 수 있다고 협박하자 그는 “멕시코는 외국의 ‘피냐타’(아이들이 막대기로 때리는 인형)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축하한다. 그와 함께 일하기를 고대한다”고 썼다.
오브라도르의 당선 이후 중남미에서 ‘핑크 타이드’가 재개될지도 주목된다. 2000년대 남미 국가를 휩쓸었던 좌파 정권은 현재 힘을 상당부분 잃었다. 최근 3년 동안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등에 우파 정권이 속속 들어선 탓이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은 오브라도르의 당선에 대해 “모든 남미 국가의 승리”라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멕시코 대통령에 ‘좌파 트럼프’… 트럼프와 각 세울까
입력 2018-07-02 19:06 수정 2018-07-02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