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사형 몰카까지… 구멍만 보이면 ‘화들짝’

입력 2018-07-02 04:01
‘몰카 공포’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위장형 몰카는 육안으로 발견이 쉽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 ①은 나사형 카메라. ②는 자동차키 모양의 카메라. ③과 ④는 여성들이 초소형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화장실 문 손잡이 주변의 구멍들. 박상은 기자, 트위터 게시물 캡처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원 여자화장실 첫 번째 칸에 들어가 문을 닫자 손잡이 부근에 작은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칸막이 중앙에도 지름이 5㎜가 되지 않는 크기의 구멍이 3∼4개씩 불규칙하게 뚫려 있었다. 구멍 몇 곳은 휴지로 막혀 있었다. 누군가 이미 ‘몰카(몰래 카메라) 공포’와 싸운 흔적이다. 기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 조명을 비춰 안을 들여다봤지만 다행히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공중화장실의 수상한 구멍들이 여성들의 일상을 짓밟는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몰카 피해 사진이 공공연하게 퍼진 후 많은 여성들이 정체불명의 구멍을 볼 때면 ‘카메라 설치 과정에서 생긴 자국이나 카메라를 숨겨둔 장소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호소한다. 몰카 피해는 당사자에게 되돌리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다. 전문가들은 “여성들 사이에서 공포심이 퍼지고 있는 것 자체가 피해”라고 지적했다.

몰카 피해는 기술 발전과 함께 증가했다. 몰카탐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성화장실에서 나사형 몰카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위치는 문 경첩이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나사형 몰카는 크기가 가로·세로 1㎝에 불과했다. 나사 홈 사이에 박힌 까만 렌즈는 2㎜도 채 되지 않았다.

한국스파이존 이원업 부장은 1일 “패널로 만들어진 조립식 화장실은 패널과 패널 사이 틈이 있어 충분히 몰카를 숨길 수 있다”며 “조립식 화장실 벽은 생각보다 쉽게 분해돼 카메라를 설치하는 데 30분에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다만 화장실 구멍을 모두 몰카와 연관짓기는 어렵다. 아무리 카메라가 작아도 연결 단자나 메모리카드 등을 넣는 본체가 있어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했다. 나무처럼 안이 비어 있지 않은 소재의 화장실 벽은 구멍을 뚫어 몰카를 설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휴지걸이대 등 시설물을 이용한 몰카 사례도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방향제나 옷걸이는 물론 비데 센서에도 몰카 설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자동차키나 여성용품 모양의 변형카메라를 화장실에 두고 가는 수법도 성행 중이다. 최근에는 카이스트 대학원생이 여장을 하고 대전의 한 영화관 여자화장실에 침입했다가 적발돼 몰카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몰카 피해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몰카 탐지 업체도 호황을 맞았다. 이 부장은 “전국에 감청설비탐지업체가 47곳 정도 있다. 이 중 전문 회사만 15곳 규모”라며 “3년 전 워터파크 탈의실 몰카 사건 이후 매출이 30∼40% 올랐고, 올 초에도 전년대비 50% 이상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 근절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특별재원 50억원을 투입해 공중화장실 5만 곳을 상시 점검한다는 내용이다. 초·중·고교에서도 몰카 점검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 탐지장비를 보급하고, 대학에선 탐지장비를 자체 확보해 상시 점검하도록 유도한다. 변형카메라에 대한 등록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여성안심보안관을 운영 중인 서울시 관계자는 “적외선 육안 탐지기, 전자파 탐지기 등 기기마다 사용법이 다르고 몰카가 고도로 발달해 전문 교육 없이는 적발하기 힘들다”며 “탐지기를 늘리면 예방효과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탐지 교육과정이 뒤따라야한다”고 조언했다. 한 몰카탐지업체 관계자는 “이미 판매된 변형카메라가 많고 해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등록제가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많이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와 솜방망이 처벌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5월 공개한 ‘2017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몰카 범죄 기소율은 해마다 낮아져 2010년 72.6%에서 2016년 31.5%로 떨어졌다. 몰카 범죄로 형이 선고되거나 확정된 1심 판결 216건을 분석해보니 약 68%가 벌금형(147건)이었다. 실형은 고작 9%(20건)에 그쳤다.

김현아 변호사는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면 피해 회복이 매우 어려운데도 법정형이 낮고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촬영죄와 유포죄를 구별하도록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돼야 하고, 특히 유포죄는 강력한 처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몰카가 유통되는 플랫폼을 규제하지 않으면 몰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개인 간 파일공유(P2P) 사이트나 웹하드 등은 불법촬영물이 확산되는 걸 방관하며 수익을 얻고 있다”며 “플랫폼에 협조를 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안규영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