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인 A씨의 회사에는 최근 ‘준비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업무 준비시간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로, 근무시간에서 제외되지만 컴퓨터 사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업무 종료 준비시간은 오후 6시부터 30분가량이다. 이 시간 역시 컴퓨터 사용이 가능하다. 컴퓨터가 일괄 셧다운(강제 종료)되기 전 작업 마무리 시간을 30분 준다는 것이다. 이 시간은 야근 시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야근 개시 시간은 오후 6시30분부터다.
하지만 이는 법 위반이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1일 “작업 준비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며 “근로자가 오전 9시 이전에 나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주거나 사실상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도 근무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야근자에게 30분을 빼고 임금을 주는 것도 완전한 ‘꼼수’”라고 꼬집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이날부터 시행됐으나 처벌을 유예하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두면서 A씨 회사처럼 꼼수를 부리는 회사가 늘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들은 “기업이 노무컨설팅을 받으며 꼼수를 생각해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계도기간 설정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30일 민주노총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로 연 집회에서도 “갑자기 생긴 계도기간 6개월 탓에 무의미한 정책이 됐다”고 비판했다.
포괄임금제에 대한 혼란도 크다. 주 40∼45시간을 근무하고 있는 B씨는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받는다. 보통 주 40시간을 일하고 필요에 따라 연장근로를 해도 추가 수당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전제로 연봉계약서를 새로 쓴다면 근무시간은 기존보다 늘어날 수 있다.
B씨는 “주 52시간으로 연봉계약을 다시 하면 근무시간은 늘면서 임금은 그대로일 것이고, 만약 지금처럼 주 40시간만 일하면 회사는 지금 연봉의 약 70%만 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아직 발표되지 않아서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기 어렵다.
주 52시간 근무로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임금삭감 분을 기본급 인상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그동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수당이 많았고, 기업은 편법으로 임금인상을 수당 중심으로 해왔기 때문에 임금이 많이 깎일 수 있다”며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기본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급을 올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채용을 줄이고 자동화로 대체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수익이 줄어 막막한 근로자들은 ‘투잡(겸업)’도 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조업 공장에 다니는 C씨는 “돈이 있어야 저녁 있는 삶도 가능하다”며 “대리기사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토로했다. 이 경우 겸업금지 조항에 걸릴 수 있다. 강명주 노무사는 “회사의 취업규칙에 겸업금지 조항이 있으면 대부분 징계 사유로 인정돼왔다”며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겸업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근로시간 이후 전화나 문자·메신저 등으로 사실상 업무지시를 하는 관행이 얼마나 바뀔지도 불안한 부분이다. 장진나 노무법인 현율 대표는 “근무시간 외 지시 관행이 단시간에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며 “불법이긴 하지만 정부가 이를 적발해서 처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근로자의 ‘분리될 자유’를 보장하라고 계도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건·택시 등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업종은 ‘노사 합의가 있을 경우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놓고 당분간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기획실장은 “노사 합의 조항을 두고 병원과 갈등이 심했는데 계도기간 발표 후 한숨 돌리는 분위기”라며 “6개월 동안 병원 측과 협의를 이끌어내고, 보건산업 인력을 확충해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실현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예슬 조효석 박상은 기자 smarty@kmib.co.kr
작업 준비시간? 연장근로수당 삭감? 꼼수에 혼란스러운 근로자들
입력 2018-07-0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