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법인,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에 악용됐다

입력 2018-07-01 20:19 수정 2018-07-01 21:04

대기업집단(그룹)에 소속된 공익법인이 ‘공익사업’보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동원되고 있다. 공익법인들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 총수 2세가 보유한 계열사 등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총수 일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거수기’ 역할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다.

공정위는 1일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조사대상 공익법인은 자산 중 21.8%(2016년 말 기준)를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공익법인(자산 중 주식 비중 5.5%)보다 4배가량 많은 규모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9월 지정된 자산 5조원 이상 57개 대기업집단(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가운데 상속·증여세 감면 혜택을 받은 공익법인 165개(51개 대기업집단)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 대부분은 총수 일가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보유주식 중 74.1%는 그룹 계열사 주식이었다. 165개 공익법인 가운데 66곳은 모두 119개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했다. 119개 계열사 중 상장사 비중은 63.9%였고, 자산 규모 1조원이상의 대형 계열사도 68.1%에 달했다. 특히 총수 2세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비중이 47.9%를 차지했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등에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을 이용한다고 의심한다. 현행법은 공익법인이 특정 기업 주식의 5%까지 보유하는 것을 ‘기부’로 판단해 상속·증여세를 물리지 않는다. 비과세혜택을 이용해 대기업집단에서 주식을 공익법인에 기부하고, 공익법인은 보유한 주식만큼 부여된 의결권을 총수 일가의 입맛에 맞게 행사하는 식으로 제도가 변질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은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시 1건의 반대 없이 모두 찬성했다. 뿐만 아니라 공익법인의 수입·비용 구성을 봐도 고유목적사업 비중은 30% 수준에 그친다. 일반 공익법인(60% 수준)의 절반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공익법인을 통해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한 대표 사례로 ‘2016년 2월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주식 매입’을 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를 사들였다. 이를 통해 재단 이사장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상승했다.

공익법인은 그룹 내부거래에도 이용되고 있다.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중 60.6%는 계열사 또는 총수 일가와의 상품용역 거래, 부동산 거래 등을 하고 있다. 공익법인을 활용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한 곳도 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정몽구재단에 현대글로비스 지분(4.46%)을 기부해 지분율을 29.99%로 떨어뜨렸다. 공익법인에 지분을 넘겨 지분율을 기준선(30%) 아래로 낮춘 것이다.

공정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익법인 규제 강화 개선안을 마련해 오는 6일 발표할 예정이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