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칼잡이’ 인생을 접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신문을 ‘난도질’하는 게 일이었다. 여름휴가를 빼고 최근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3일 격리치료를 받은 걸 빼고 단 하루도 펑크를 낸 적이 없었다.
기획재정부 대변인실에서 신문 스크랩 편집을 담당했던 정기재(59·사진) 사무관 이야기다. 퇴직을 앞둔 정 사무관은 1일부터 1년간 공로휴직에 들어갔다. 그는 박정희정부 시절이던 1979년 재무부에 입사했다. 40년 동안 소속 부처 이름은 재무부에서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기재부로 바뀌었지만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은 늘 새벽 4시였죠. 밤늦게 기자들과 술을 마신 날이면 못 일어날까봐 사무실 책상 위에서 잠을 청한 적도 많았죠.”
그가 매일 만드는 ‘기재일보’는 관가에서 호평을 받은 지 오래다. 기재부는 물론 국회와 청와대 등 700∼800개 주요 공공기관에 뿌려진다. A4용지 20∼30장에 그날 조간신문의 ‘엑기스’ 경제기사만 선별·배치하는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른 부처 대변인실에서 스크랩하는 법을 배우러 오기도 했다. 비법을 물어보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공무원들이 꼭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 답이 나와요.”
어떤 때는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스크랩 맨 앞에 배치해 윗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정 사무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공무원 감축을 진행했었다. 구조조정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부채가 많은 공무원이 표적이 됐다고 한다. 사람 좋은 탓에 친구 빚보증을 섰다가 낭패를 본 정 사무관이 대상에 올랐다. 그때 “정기재를 자르려면 추가로 자를 직원 7명 더 데려와라”고 막았던 이는 예산청 1대 청장을 지낸 안병우 당시 재정경제원 기획실장이었다.
“컴퓨터 PDF파일로 신문 편집한 지 몇 년 안 됐어요. 신문은 칼로 오려야 제 맛이죠.”
40년 경험을 바탕으로 ‘명 대변인’ 3명만 꼽아보라 했더니 안 전 청장,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 고(故) 강봉균 전 의원을 지목했다. 3명 모두 장관에게 잘 보이려하기보다 기자들과 호흡을 함께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전했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는 인생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 그는 전국의 골프장을 순례할 계획이다. 실력은 티칭프로 자격증을 딸 정도로 수준급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40년 ‘신문 스크랩 편집’ 마감합니다
입력 2018-07-0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