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내수 두 축 투자·소비 흔들… 폭염 속 ‘살얼음판 경제’

입력 2018-06-30 04:00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에 녹이 슬고 있다. 그나마 수출로 버티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내수는 갈수록 움츠러들고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냉랭하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 내년에 다시 오를 최저임금은 또 하나의 뇌관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떠받치면서 중장기적으로 파격적 규제완화 등 혁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꾸 켜지는 ‘빨간불’

통계청은 29일 ‘5월 산업활동 동향’을 발표하고 지난달 전산업생산이 4월보다 0.3%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산업생산지수는 107.5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세부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의 앞길이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투자와 소비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소비지표인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0% 줄면서 4월(-0.9%)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설비투자는 3.2% 감소하면서 3개월 연속으로 쪼그라들었다. 설비투자가 석 달 연속 감소하기는 2015년 3∼5월에 이어 3년 만이다. 통계청은 반도체 투자가 둔화하면서 설비투자가 앞으로도 감소 흐름을 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용효과가 큰 건설투자도 뒷걸음질을 쳤다. 건설기성(건설업체가 실제로 시공한 금액)은 2.2% 감소했다.

수출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지난달 수출은 1년4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세(13.5%)를 보이면서 경기를 지탱했다. 다만 글로벌 보호무역이 심화된다면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기 전망은 어둡다. 앞으로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인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하며 4개월 연속으로 떨어졌다. 이 지표가 6개월 연속 내려앉으면 경기가 상승 추세에서 하강 추세로 돌아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달과 같은 수준이었다.

기업들이 바라보는 경기 전망도 부정적이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전체 산업업황BSI는 80으로 한 달 전보다 1포인트 떨어졌다. 다음 달 업황전망 역시 80으로 지난달보다 2포인트 내려갔다. BSI가 100 미만이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곳보다 많음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우울한 내일’을 예고한다.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BSI 조사에서 다음 달 전망치는 90.7을 기록했다. 1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경고하는 전문가… 낙관하는 정부

정부는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기존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산업활동 동향 평가 자료에서 “수출 호조, 추가경정예산의 본격 집행,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에 힘입어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경기에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할 뿐 내수 침체, 무역전쟁 심화, 반도체 경기 하강 전망 등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9일 주최한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평가와 과제’ 국제콘퍼런스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주제발표를 한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소득주도성장은 단순히 임금 인상 정책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경제정책이나 사회보장정책의 보완적 역할 없이는 과부하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여파로 고용과 내수가 위축될 수 있으니 정부 재정의 역할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도 “최저임금 인상 이후 보완정책 수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부작용 우려가 커졌고 고용 상황도 악화됐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다음 달에 저소득층 소득증대 대책 등 보완대책을 마련해 내놓을 계획이지만 중장기 경제살리기 정책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내용 부실’을 이유로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 취소한 것도 이런 이유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열린 ‘제3차 혁신성장 전략 점검회의’에서 “혁신성장 주체인 기업이 투자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각 부처가 기업과 정례 회동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해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