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 핵 합의’를 탈퇴한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 긴장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란 핵 합의로 잠시 화해의 순간을 맞이했던 양국이 다시 적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미국은 27일(현지시간) 이란 핵 합의가 유효했던 기간 유예했던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공식적으로 재개했다. 이에 대응해 이란은 9년 만에 일부 핵 시설 재가동에 들어갔다. 미 재무부는 이날 외국 기업들의 대이란 민항기 부품 수출 면허와 이란산 카펫·피스타치오·캐비어 수입 면허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카펫의 경우 이란에서 만들어져 제3국을 통해 수입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란의 자금줄 차단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해당 기업들은 8월 6일까지 이란과의 교역을 종료해야 한다. 이 시점 이후에도 이란과 무역을 한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미국은 이란과의 거래 기업들이 사업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제재 유예기간을 설정했다.
미국은 또 동맹국들에 11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며 인도 한국 일본 터키 등도 이란산 원유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 반발 기류도 발생했다. 중국과 터키는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요청을 거부했다. 특히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문제가 미·중 무역전쟁의 새로운 암초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이란산 원유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인 인도도 미국의 요구에 부정적이다. 인도를 방문 중인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도 외교부는 “인도는 특정 국가의 일방적 제재는 따르지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이란은 9년 만에 일부 핵 시설을 재가동했다. 이란은 이스파한에 위치한 육불화우라늄(UF6) 생산설비를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가동시켰다. 다만 이번 재가동은 이란 핵 합의에 따라 용인되는 수준이다.
이란은 미국의 탈퇴로 파기 위기에 처한 핵 합의를 살리기 위해 유럽 국가들과 물밑노력을 하면서도 핵 합의 폐기 이후 상황을 대비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란이 미국을 향해 우라늄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핵시설 재가동도 우라늄 농축 역량을 강화하라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란 내부 사정도 변수다. 이란 테헤란에서는 정부의 경제실정을 비판하는 상인들의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을 시위 배후 세력으로 몰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이란 내부 동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경제난이 심화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미국 제재로 반미 감정이 고조돼 체제가 결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미국, “이란산 카펫과 캐비어도 수입하지 마라” 경제 제재 재개
입력 2018-06-29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