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꺼져”… 대한민국의 ‘외국인 혐오’ 민낯

입력 2018-06-29 04:04
지난 27일 저녁시간대 이태원의 한 식당이 비어 있는 모습. 국내에서 유일하게 예멘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알려진 이곳에서는 예멘 출신 난민들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예멘 출신 요제프 알라미(22)씨는 요새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심호흡을 한다. 지난 25일엔 경의중앙선 대곡역에서 전철을 탔다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30분간 호통을 들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한 백발노인이 대뜸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큰소리로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알라미씨가 서툰 한국어로 “예멘에서 왔다”고 답하자 노인은 언성을 높였다. 알라미씨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너희끼리 싸우지 왜 여기로 왔느냐” “한국인은 다 너희 싫어하니까 돌아가라”고 윽박질렀다.

같은 칸 승객들이 모두 쳐다봤지만 호통은 계속됐다. 알라미씨는 목적지인 효창공원앞역까지 11개 역을 지나는 동안 숨죽인 채 가만히 있어야 했다. 알라미씨는 28일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 (할아버지가) 영어를 섞어가며 욕을 하더라”며 “한국에 온 지 1년이 됐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까지 한국인은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를 계기로 유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현상이 국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 지르거나 손가락질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사이에서는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 이태원 등지에서 식당이나 상점을 운영하는 외국인들은 매출이 줄어들까 노심초사다. 실제로 손님 발길이 끊긴 곳도 있다. 지난 26일 저녁, 국내에서 유일하게 예멘 음식을 파는 이태원의 한 식당에는 적막만 흘렀다. 여러 블로그에 자주 소개됐을 만큼 유명한 곳이지만 테이블 10개가 모두 공석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자 식당 직원 마호메드씨는 민망한 듯 “원래는 한국인 손님도 꽤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27일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유일한 손님이었던 한 예멘인은 “나도 그저께 길거리에서 한국인에게 욕을 들었다”고 말했다.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이웃 주민도 있다. 식당 근처에 사는 김모(62)씨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가 터지고 나서 저런 식당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고 했다.

오빠와 함께 쌀국수집을 운영하는 베트남 출신 응우옌 티 홍 한(26)씨는 최근 아르바이트생을 뽑으면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손님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인데 직원이 자칫 나쁜 인상을 주면 매출에 타격이 커서다. 한씨는 “예멘 난민 사태 이후로 특히 동남아나 아프리카 출신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며 “한국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직원을 뽑기 위해 고향과 학력, 언어 능력, 태도, 외모 등을 종합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건너편 식당에서 아프리카 음식을 파는 크리스 트루터(42)씨도 최근 걱정이 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4년 전 왔다는 그는 “우리 식당의 경우 한국인 손님이 90%를 차지해 이런 문제가 터지면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일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는 인도 출신 소노(36)씨도 “노인들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꺼지라’고 하는 일이 늘었다”며 “한국인 많은 곳에 가기가 싫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