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전시장. 불시착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정체 모를 기계 조각들이 이상한 소음을 내고 있다. 그 우주선에서 쏘는 예수상, 시계, 계량기의 숫자 등 각종 이미지가 천장과 벽, 바닥에 부유하듯 떠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에 위치한 비영리 전시공간 ‘씨알콜렉티브(CR Collective)’에서 올해의 CR작가로 선정된 중견 작가 신형섭(50·홍익대 교수)의 개인전 ‘레트로젝터’전이 한창이다. 첫 인상은 SF 영화의 우주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전시장 불을 켜고 기계 작동을 멈추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광채를 뿜어내던 이상하게 생긴 장치는 바비큐 그릴이거나 철제 쓰레기통에 다리를 붙인 것에 불과해 속은 기분이 들 정도다. 작가는 생활용품을 가지고 이리저리 궁구한 끝에 알록달록한 빛과 영상을 내는 기계장치를 고안해낸 것이다.
이런 장치는 ‘기계 덕후’의 발명품처럼 흥미진진하다. 그 안에는 작가가 던지는 ‘미술이란 무엇인가’ ‘재현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같은 근본적이고도 심오한 질문이 들어있다.
시작은 환등기(슬라이드 프로젝터)였다. 슬라이드 필름을 넣어 영상을 투사하는 이 아날로그 장치 안에는 열을 식히는 쿨러가 있다. 미국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유학 시절, 환등기를 가지고 놀던 작가는 슬라이드 필름 대신에 깃털을 넣어봤다. 팬 때문에 깃털이 파르르 떨리며 움직이는 영상이 벽에 비쳤다. ‘정지된 영상을 한번 움직이게 해볼까’하는 장난은 이런 재기발랄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선 스스로 고안한 장치를 활용했다. 싸구려 성물(聖物), 제기의 수술, 계량기의 숫자판 등 작은 오브제를 그릴 안에 넣고 LED 전구로 비추면, 그릴 밖에 부착한 렌즈를 통해 사방팔방에 이미지가 투사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미술에서 재현은 외부의 대상을 캔버스든 사진이든 평면에 옮기는 것이다. 재현한 대상은 캔버스 안에는 없다”면서 “하지만 이 장치는 벽에 재현된 이미지가 그릴의 뚜껑을 열면 바로 확인이 되며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싸구려 성물이나 플라스틱 제품같이 볼품없는 것도 빛과 렌즈를 통해 근사하거나 성스러운,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새롭게 탄생해 그 이미지의 변신이 놀랍다. 작가가 그릴로 만든 기계장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각의 역할을 하는 ‘기계 조각’이면서 이미지를 투사하는 매체가 되는 ‘미디어 조각’이 된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작업실이 전파상을 방불케 했다는 작가는 “그릴에 구멍 뚫고, 전선을 연결하고, 전구와 스위치를 다는 등 그릴 기계 장치를 연구하는 데 1년이 걸렸다”며 “이제는 관록이 붙어 한 달 정도면 이런 미디어 조각 하나가 뚝딱 나온다”며 웃었다.
전시 제목인 ‘레트로젝터’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와 ‘프로젝터(projector)’의 합성어다. 역사적인 모든 요소가 융합된 복고를 통해 동시대 감성에 맞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7월 21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광채 뿜어내는 우주선, 알고보니 바비큐 그릴?
입력 2018-06-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