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만에 종합병원 0곳… ‘행복도시’ 재난엔 무대책

입력 2018-06-28 04:01
27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세종시 새롬동 주상복합 공사현장에서 과학수사대가 피해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세종시 주상복합건물 공사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세종시의 종합병원 부재(不在)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고에서 유독가스를 마신 부상자들이 천안 등 인근 지역 병원으로 옮겨지는 데는 대부분 30분 이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인구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인 곳에는 대형 사고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종합병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종소방본부는 부상자 37명 가운데 중상자 3명을 포함해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환자 20명은 대전·충남 등 인근 지역 9개 병원으로 분산 입원해 치료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나머지 17명은 퇴원했다.

사고 직후 대전 을지병원으로 옮겨졌던 부상자 5명은 유독가스 치료를 위해 대구 광개토병원으로 한 차례 더 이동해야 했다. 체내 유독가스를 배출·희석하는 고압산소치료기는 고가여서 갖추고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화재 시 유독가스를 마신 부상자는 병원으로 빨리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화재 시 당황하면 평소보다 호흡량이 3배 많아져 다량의 유독가스가 폐로 들어간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 해독해야 흡입화상(기도 점막 손상)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질식을 일으키는 일산화탄소 등 일부 유독가스는 빠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어 가능한 빨리 응급조치를 해 피해 확대를 예방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구 30만여명인 세종시는 응급실을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아직 없다. 세종시는 신도시라 대형병원이 들어설 시간이 부족했다. 세종시가 의료 사각지대라는 지적은 2013년부터 계속됐다. 도담동에 500병상 규모로 짓기로 한 세종충남대병원은 내년 하반기에야 완공된다. 울산도 광역시 중 유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이 없다. 종합병원급 응급의료센터만 1곳 있을 뿐이다.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인 용인은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없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지역 거점 병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인구에 비해 부족하다.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응급의료기관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인구 대비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사고로 숨진 A씨(25)는 아버지와 함께 현장에서 일한 첫날 변을 당했다. 아버지는 A씨와 떨어진 곳에서 일하다가 가까스로 대피했으나 아들은 화재 발생 5시간여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대학 졸업 뒤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공사장에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인 사망자 B씨(34)는 아직 중국에서 가족이 도착하지 않아 빈소에 시신만 안치된 상태다. 부상자 37명 가운데 14명은 중국인 근로자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직원을 현장에 파견했고 중국 관영매체도 화재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건설현장에서 유증기 폭발에 무게를 두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유증기는 기름방울이 안개 형태로 공기 중에 분포돼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채수종 세종소방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목격자와 공사 관계자들은 지하에서 ‘펑’ 하는 소리가 10회 이상 들렸다고 진술했다”며 “에폭시 작업(빈틈 보수) 시 발생한 유증기 폭발이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한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28일에도 화재원인 파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지방노동청 등과 합동감식을 이어간다.

최예슬 기자, 세종=전희진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