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 대통령도 “답답하다”… 민낯 드러난 정부의 실력

입력 2018-06-28 04:00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답답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의 업무 성과를 놓고 한 얘기였다. 문 대통령은 27일 오후로 예정됐던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 내용을 미리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런 감정을 토로했다. 회의는 지난 1월 규제혁신 토론회 이후 추진해온 혁신성장 관련 사업의 성과를 점검하고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규제의 해결 방향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회의를 연기하자고 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면 규제혁신의 폭을 더 넓히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회의를 여는 게 무의미할 만큼 내용이 미흡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려던 회의는 불과 몇 시간을 남겨놓고 전격 취소됐다.

회의 보고서는 국무조정실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농림축산식품부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등 8개 부처가 참여해 작성한 것이었다. 내각의 절반가량이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참사에 가까웠다.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총리가 극히 이례적인 ‘회의 취소’로 그것을 노출시켜야 했을 만큼 심각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가장 미흡한 대목은 ‘갈등 관리’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인정보·빅데이터 등의 분야를 언급하며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규제의 혁신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갈등을 풀기 어려운 규제도 이해당사자를 10번이고 20번이고 찾아가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느냐”고 당부했다.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질책이다. 이날 사태는 일을 잘하지도 못하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정부의 민낯을 보여줬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출범 1년을 넘긴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초라하다. 그 원인을 정책의 큰 방향에서 찾는 회의론이 분출하는 마당에 업무 추진 능력마저 이 모양이라면 암울해진다. 지방선거 민심은 보수 정부나 진보 정부가 아닌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경제는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비로소 유능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각 부처의 수장과 관료들은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속도와 체감을 키워드로 삼아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내각의 역량은 청와대의 국정 주도권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의 힘이 너무 크면 내각 기능이 위축되고, 그래서 일이 잘 안 돌아가면 청와대가 더 많이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든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때가 됐다. 회의 취소 결정이 의례적 기강 잡기에 머문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곧 있을 개각은 정부의 업무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냉철한 평가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