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코 베어갔다”며 분노하는 고객, “직원 단순 실수”라며 억울해하는 은행

입력 2018-06-28 04:00

“서민들은 금리 0.1% 포인트라도 낮춰보려고 발버둥치는데….”

27일 서울 을지로의 한 은행 점포를 찾은 차모(38)씨는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과다하게 책정해 이자를 더 걷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차씨는 전세금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찾은 참이었다. 그는 “비대면 대출도 가능하지만 대출금리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지점에 왔다”며 “우대금리를 받으려고 자동이체를 3건이나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은행도 ‘이자 장사’로 먹고살겠지만 대출자들이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대출금리 과다 산정 파문 이후 일선 은행 창구에는 고객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전날 환급 대책을 발표한 한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은 “오늘 오전에만 고객 전화를 3통 정도 받았다”며 “(금리 산정절차 등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일부 대출 건에서 업무상 실수가 있었고 전체 대출 건수와 비교하면 아주 일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은행은 각 지점에 고객 상담 매뉴얼을 담은 공문을 내려 보냈다.

대출금리 과다 산정에 대해 은행들은 “일부 직원의 실수에 불과한 사안”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출 담당 직원은 “주로 신입들이 대출업무를 처음 맡으면서 입력할 내용을 실수로 누락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대출자 정보를 직원이 수기로 입력하면서 발생한 실수라는 것이다. 한 은행원은 “은행권 전체의 신뢰 문제로 비화되는 건 지나치다”며 “은행이 받아야 할 금리보다 더 낮은 금리를 책정한 사례도 많았는데, 이런 경우 대출자에게 이자를 더 내라고 안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았다는 김영준(48)씨는 “직원의 단순 실수로 (은행 전산상에) 담보가 없는 사람에게 담보대출이 나갈 수 있다는 구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돈 빌리는 사람 입장에선 은행이 ‘금리가 이렇다’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존 대출자의 대응 방안도 마땅치 않다. 서울 을지로의 한 은행 지점에서 만난 이모(63·여)씨는 “매월 내는 이자가 바뀌면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대출금리 과다 산정 파문이 커지자 은행을 상대로 집중 점검에 나섰다. 은행 10곳에 이어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 4곳의 대출금리 책정 과정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경남은행에서 1만2000여건의 금리 과다 청구 사례가 드러난 만큼 다른 지방은행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경남은행은 전체 165곳 점포 중 100곳 정도에서 집중적으로 금리 산정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공정 영업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소비자가 금리 산정 내역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금융권에서는 금리를 잘못 산정한 은행이나 직원을 징계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