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출신 男, 양반가 女 만나 삶이 달라졌다? 180도 뒤집힌 ‘신데렐라 문법’

입력 2018-06-26 21:49 수정 2018-06-26 22:09
26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파티오나인에서 열린 tvN 새 주말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변요한, 이병헌, 김태리, 김민정, 유연석(왼쪽부터)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CJ E&M 제공

스타 작가 김은숙의 새로운 신데렐라는 다부진 근육질의 이병헌일까. 집필하는 드라마마다 신데렐라 플롯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김 작가가 제작비만 400억원 넘게 투입된 신작 ‘미스터션샤인’에서 전작들과 달리 캐릭터를 비틀었다. 고난에 빠진 여성이 능력 있거나 부유한 남성을 만나 행복해진다는 전형적인 남녀 구도는 뒤집혔다. 신작에서는 노비 출신의 남성이 양반가 출신의 주체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삶이 변화한다.

26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 파티오나인에서 열린 tvN 새 주말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제작발표회에서 유진초이 역할을 맡은 이병헌은 “김은숙 작가님 드라마가 지금까지 (여성 시청자들이) 남자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는 그런 드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반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여자 캐릭터가 낮에는 사대부 아기씨이지만 밤에는 누구보다 전투력 넘치는 의병이다. (김 작가의 기존 캐릭터와) 반대의 해석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애신 역할의 김태리도 자신의 캐릭터를 “복잡한 서사의 인물이다. 다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그동안 주로 수동적인 여성이 능력 있는 남성과 사랑에 빠져 고난을 해결한다는 해피엔딩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신작에서는 구도가 달라졌다. 남자 주인공 유진초이는 노비의 아들로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함을 타고 조선에서 도망쳤다가 이후 미군이 돼 돌아온 인물이다. 반면 여자 주인공은 귀한 신분이다. 고애신은 양반가의 딸인데다가 조부모님 몰래 신식학당에서 영어를 배우고 독립신문을 보는 등 전통성을 탈피한 주체적 여성이다. 심지어 포수를 찾아가 사격술을 익히기도 한다.

대중의 욕망을 민첩하게 포착하는 김 작가가 성별 구도를 뒤집은 이유로는 주류 담론으로 부상한 ‘페미니즘’이 꼽힌다. 김 작가는 평소 자신의 드라마가 ‘작품’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한다고 말해왔다. 예술성을 뽐내는 대신 주 시청자층인 여성의 판타지를 환상적으로 구현해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게 우선이란 뜻이다. 2000∼2010년대 중반까지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 신데렐라 문법에 충실한 드라마로 성공한 배경은 유명 아나운서와 배우들이 연달아 재력가와 결혼해 주목받았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미스터션샤인에는 유교적 여성상을 강요받는 사대부의 딸이 몰래 영어를 배우고 글을 익혀 총잡이 의병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그려진다. 과거 ‘욕망의 대상’이 되길 원했던 여성들이 페미니즘 담론을 이끌며 ‘욕망의 주체’가 되기로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신데렐라 얘기로는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미스터션샤인은 방영도 하기 전에 세계적인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에 판매돼 다음 달 7일 tvN과 동시에 공개된다. 드라마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영화계 스타도 대거 출연했다. 이병헌은 ‘아이리스’ 이후 9년 만에, 변요한은 6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왔다. 영화 ‘아가씨’와 ‘리틀 포레스트’를 히트시킨 김태리는 생애 첫 드라마 출연이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