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前 대법원장 퇴임 직후 하드디스크 디가우징했다”

입력 2018-06-26 19:10 수정 2018-06-26 23:13

법원행정처는 26일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 관련 핵심 단서로 꼽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의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저장된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하게 삭제)돼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당장 검찰이 반발하고 나서 압수수색 등 검찰의 강제 수사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성이 있는 410개의 주요 파일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비실명화한 일부 파일을 제외하고 모두 원본 파일을 (검찰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의 하드디스크 5개에서 추출한 문건 410개의 원본 파일이다. 다만 검찰이 요청한 하드디스크 원본에 대해서는 “제기되는 의혹과 관련성이 없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겨 있는 파일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다”며 이날 제출을 거부했다.

행정처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행정처장의 하드디스크를 내부 규정에 따라 퇴임 직후인 지난해 10월 디가우징했다고 설명했다. 안철상 행정처장은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이 하드디스크를 훼손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는 퇴근길 기자들과 만나 “디가우징은 해당 컴퓨터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검찰은 하드디스크가 제출 자료에서 제외되자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410개 파일은 사법부가 제출한 하드디스크 5개 전체에서 0.1%에 불과한 분량”이라며 “이를 근거로 ‘관련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고 결론 낸다면 누구도 수긍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하드디스크 등 증거 능력이 있는 핵심증거를 확보할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410개 파일이 담겨 있던 하드디스크 원본을 조사하지 않으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당시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일의 증거능력을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본다. 디가우징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의 하드디스크도 확보해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일단 자료를 재요청한 뒤 강제수사로 전환할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처가 하드디스크 제출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행정처와 양 전 대법원장, 임 전 차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강제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압수수색은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야 하므로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