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한국전에 집중하겠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 대표팀을 이끄는 요하임 뢰브 감독은 지난 24일(한국시간) “16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날 대비를 하느냐”는 언론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독일은 그간 한국과 3번의 A매치를 치러 2승1패를 기록했다.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한국전의 기억들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1994 미국월드컵 조별리그에서의 첫 맞대결은 독일의 축구 영웅 위르겐 클린스만이 “5분만 더 뛰었더라면 한국과 비겼을 것”이라고 회고한 경기다. 미국 댈라스의 무더위 속에서 치러진 이 경기에서 한국은 클린스만에게 2골을 내주는 등 전반전에만 3실점했다. 하지만 골키퍼를 최인영에서 이운재로 바꾼 후반 독일을 전원 수비로 몰아넣는 장면을 연출했다.
후반 7분 박정배가 최전방의 황선홍을 겨냥해 올린 롱패스에 독일 수비진은 무너졌다. 황선홍은 절묘한 왼발 트래핑 후 오른발 칩샷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이어 후반 18분 홍명보가 골대로부터 25m 거리에서 강한 오른발 중거리슛을 때려 넣었다.
턱밑까지 추격한 한국은 고정운과 최영일이 과감한 슈팅을 때리며 공세를 이어갔다. 의외로 독일이 전원 수비를 하자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짜증이 난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관중석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다 교체되기도 했다. 한국이 끝내 동점골을 터뜨리진 못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외신의 포커스는 막판까지 독일을 몰아붙인 한국에 집중됐다.
두 팀은 8년 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은 폴란드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잇따라 격파하고 준결승에 올라왔다. 유럽 축구를 두려워하던 분위기는 없었다. 경기 전 독일 언론은 “쉬지 않고 공격하는 한국은 달갑지 않은 상대”라고 했고,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당시 서독팀 감독이었던 독일 축구 레전드 프란츠 베켄바워는 “아시아의 축구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이은 연장 승부로 바닥난 체력에도 한국은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차두리의 크로스를 받아 이천수가 때린 오른발 슛은 독일 수문장 올리버 칸의 손에 스쳤다. 승부를 가른 건 경기 막판의 집중력이었다. 후반 30분 올리버 노이빌레가 올린 크로스는 제대로 맞지 않고 땅볼로 굴렀다. 하지만 홍명보와 유상철이 적극적으로 걷어내지 못해 미하엘 발락에게 득점을 허용했다. 한국은 0대 1로 패배했다.
한국은 2004년 12월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앞선 2연패를 설욕했다. 한·일월드컵 골든볼 수상자였던 칸을 비롯해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 등이 나선 독일의 라인업은 최정예였다. 독일은 한국과 붙기 3일 전 일본에서 평가전을 치러 3대 0으로 승리했다.
오히려 한국이 이영표-송종국 대신 김동진-박규선으로 좌우 윙백을 구성하는 등 최정예 전력이 아니었다. 이 경기로 A매치에 데뷔한 선수만 4명이었다. 조 본프레레 당시 한국 감독이 “승패보다는 선수 테스트에 중점을 둔다”고 말할 정도였다.
열세가 예상된 한국은 이날 의외의 경기력으로 독일을 3대 1로 완파했다. 경기 초반부터 차두리가 람을 제치며 오른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40여m 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 16분 미드필더 김동진이 흘러나오는 공을 쇄도하며 왼발 논스톱 중거리슛, 선제골을 넣었다.
발락이 프리킥으로 1-1 동점을 만들었지만 후반 25분 이동국이 그림 같은 오른발 발리슛으로 다시 앞서가는 골을, 조재진은 후반 41분 쐐기골을 터뜨렸다. 이운재는 후반 39분 발락의 페널티킥을 쳐내며 앞선 실점을 되갚기도 했다. 당시 독일 언론은 “거친 한국에 맞서 처음부터 맥을 못 췄다”고 보도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독일전의 추억, 울고 울고 웃었다 “우린 호구가 아니다”
입력 2018-06-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