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익편취 규제’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났다. 하지만 대기업집단의 총수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없애기는커녕 제도 취지를 역행하고 있다. 각종 ‘꼼수’를 동원해 규제 사각지대를 찾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율 30%’라는 기준을 피하기 위해 지분율을 29%로 낮추고 내부거래를 이어가는가 하면 자회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규제 강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익편취 규제 도입 이후 내부거래 실태를 조사하면서 대기업들의 규제회피로 의심되는 사례들을 다수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떨어뜨려 규제를 피하거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자회사를 설립해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100%였다. 이 회사는 규제 시행시기(2014년 2월)를 전후한 2013∼2015년 지분매각을 통해 총수 일가 지분율을 29.9%로 맞췄다. 2015년 7월 상장됐지만 총수 일가 지분율이 규제 기준인 30%보다 낮아 규제의 칼날에서 벗어났다. 규제를 피한 이노션의 내부거래 규모는 2013년 1376억원에서 지난해 2407억원으로 1.7배 늘었다. 매출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 역시 2015년부터 50%를 초과했다. 총수 일가는 내부거래로 가치가 오른 이노션의 주식을 팔아 핵심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
현대차그룹 내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에도 비슷한 방식이 동원됐다. 총수 일가는 글로비스의 주식 43.4%를 보유하다가 규제 시행 후인 2015년 2월 지분율을 29.9%로 낮췄다. 글로비스는 계열사 내부거래로 단숨에 업계 최상위 수준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지난해 글로비스의 내부거래 규모는 2조6000억원대에 이르렀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30%인 사각지대 계열사 중 가장 큰 내부거래 규모다. 총수 일가는 글로비스 주식 매각자금을 다른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는 데 썼다. 이노션과 글로비스는 내부거래로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강화한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제재를 가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해 왔다. 하지만 규제 도입 이후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되레 높아졌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제도 개선이 불가피해졌다. 국회 역시 사익편취 규제의 기준(상장사 기준)을 직접지분율 3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선 자회사를 설립해 일감을 몰아준 사례도 있었다. 1982년 설립된 삼성웰스토리는 삼성그룹 내 연수원의 급식 및 식음료를 공급하는 내부거래를 해왔다. 삼성웰스토리는 사익편취 규제가 도입되기 전인 2013년 물적분할을 통해 100%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했다. 삼성웰스토리의 내부거래 비중은 자회사 설립 이후 꾸준히 36∼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 이상이 계열사와 수의계약을 통해 이뤄졌다. 삼성웰스토리는 연간 당기순이익 대부분을 배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공정위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총수 일가가 직접 보유하는 지분이 없는 자회사를 규제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자회사의 경우에도 내부거래 규모 및 비중이 상당해 모회사의 총수 일가 주주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6일 공정위가 내놓을 제도 개선안에 총수 일가의 간접지분율도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총수 지분율 29.9%의 비밀, 묘수 아닌 꼼수
입력 2018-06-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