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569대 1… “휴전선 한 달만 열어달라”

입력 2018-06-25 22:41 수정 2018-06-26 00:03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95세 박성은 할아버지가 25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서 1차 후보자 500명 컴퓨터 추첨 결과를 확인한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의 서류 한 귀퉁이에 ‘추첨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고향인 평북 철산군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려고 수없이 상봉 신청을 했다는 박 할아버지는 “이제 살면 몇 년을 더 살겠느냐.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무겁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5만6890여명 가운데 90세 이상만 1만2000명이 넘는다. 최현규 기자

568.9대 1. 우리나라의 생존 이산가족이 오는 8월 20일부터 일주일 간 북한 금강산에서 열리는 ‘8·15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될 확률이다.

대한적십자사(한적)는 25일 서울 중구 서울사무소에서 이산가족 상봉 1차 후보자 500명을 컴퓨터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했다. 이날 오전 인선위원회에서 후보자 선정 기준 회의를 마친 박경서 한적 회장이 추첨용 컴퓨터 앞에 앉자 추첨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박 회장에게 쏠렸다. 박 회장이 버튼을 누르자 컴퓨터는 추첨을 시작했다.

추첨장에서는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들의 애틋한 사연이 쏟아졌다. 황해북도 신계군 출신 이용녀(90) 할머니는 1차 후보자에 선정되지 못하자 “이 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며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좀 마련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 할머니는 “1·4 후퇴 때 남편과 함께 피란을 오면서 신계군에 세 살 된 딸을 두고 왔다”며 “대통령도 판문점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왔는데, 왜 나는 내 딸을 만나지 못하느냐”고 울먹였다.

평안북도 철산군 출신 박성은(95) 할아버지도 추첨을 기다리는 동안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이 보고 싶은데, 이번이 마지막 신청이 될 것”이라며 당첨을 간절히 소원했다. 하지만 박 할아버지 역시 1차 추첨에서 탈락했다. 박 할아버지는 추첨 탈락 후 “난 인생의 낙제자”라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수도 없이 해서 몇 번을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차라리 한 달만 휴전선을 열어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1차 후보자로 선정된 500명도 금강산 면회소행을 장담할 수 없다. 한적은 500명 1차 후보자의 건강 상태와 상봉 의사 등을 확인해 2차 상봉 후보자를 250명으로 압축한다. 이어 다음 달 25일까지 북한과 생사확인 절차를 거친 후 오는 8월 4일 최종 상봉 대상자 100명을 선정한다.

100여명 규모로 진행돼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상봉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한 대다수 이산가족이 눈물만 삼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은 지난 22일 열린 적십자회담에서도 상봉 정례화나 전면적인 생사확인 등에 합의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정례화 협상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남북은 이번 상봉 행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다음 상봉 행사에 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남북 상호 간 신뢰 구축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