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법원 수사팀이 하드디스크 요구하는 이유는

입력 2018-06-25 18:56 수정 2018-06-25 21:46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수사 연루자의 하드디스크를 대법원에 요구한 것은 핵심 단서의 증거 능력을 법원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다. 핵심 단서는 대법원 특별조사단(특조단)이 공개한 관련 의혹 문건이다. 문건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검찰이 직접 조사해야만 문건의 실제 작성자 및 작성 경위 등을 특정할 수 있게 된다.

검찰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때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단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경험을 했다. 해당 단서는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네이버 메일 계정에서 발견된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로, 윤석열 당시 팀장이 이끈 국정원 수사팀이 2013년 10월 발견했다. 이 파일에는 댓글 공작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명 수백여 개가 담겨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할 가장 핵심적인 증거로 꼽혔다.

하지만 김씨는 법정에서 “파일을 내가 작성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를 토대로 2015년 7월 이 두 파일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작성 사실을 부인한 상황에서 이 두 파일을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 문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때도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하드디스크를 조사하지 못한다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라 본다. 앞서 대법원 특조단이 공개한 의혹 문건은 디지털 저장매체(하드디스크)에서 출력한 문서다. 작성 주체·경위·시점 등을 명확히 분석해야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재판거래 문건 등의 작성자로 지목된 이들은 법정에서 작성 사실을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25일 “누가 특조단 공개 문건을 자기가 썼다고 인정하겠느냐”며 “디지털 포렌식 등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검찰 수사는 진전이 없는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이날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법원노조) 조석제 본부장을 상대로 고발인 조사만 하는 데 그쳤다. 조 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를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