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차이로 운명 바뀐 인천시-옌청시

입력 2018-06-26 04:04
인천시는 구한말 부산항, 원산항에 이어 세 번째로 외국인에게 문을 연 개방도시다. 2000년대 한국 최초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서해 너머 중국 동해안에 자리 잡은 장쑤성 옌청시. 이 도시는 기껏해야 명나라 무협지 ‘수호지(水滸志)’의 무대쯤으로나 언급되거나 상하이, 난징 등 대도시의 배후 면화산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두 도시가 지금 대조적 모습을 보인다. 공교롭게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의 대우차(현 한국GM)와 기아차가 외자유치 빛과 그림자로 등장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한국의 고도성장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투자와 혁신을 거듭해 온 반면 한국은 고도성장의 자만에 취해 허우적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자유구역 1호의 민낯

한국은행 인천본부 박병국 과장은 25일 펴낸 ‘인천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의 구조적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GM의 최근 경영정상화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인천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지역 자동차부품산업은 30여년간 지역 내 다양한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조성된 안정적 산업생태계, 한국GM과의 높은 연계성 등에 힘입어 주력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GM 의존증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GM의 실적에 따라 업황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2013년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시장 철수 이후 협력사 매출은 급락했다.

인천지역 1차 협력사의 68%는 한국GM과 거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한국GM과 단독 거래관계다. 단독거래 업체 중 연간 매출이 500억원 미만인 업체는 78.9%(38곳)를 차지한다. 500억원 이상은 4곳에 불과하다. 인천지역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저부가가치 업종 비중이 높고 매출구조의 다변화 정도가 낮아 특정 완성차업체의 매출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첨단 자동차 수요의 급증이 예상되는데도 인천지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미약하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을 보면 인천지역 자동차부품업체들은 0.65%에 그친다. 이 지역 제조업 평균(1.15%)은 물론 전국 자동차산업 평균(1.84%)보다 크게 낮다.

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근시안 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부와 인천시는 2004년부터 인천지역을 자동차부품산업 클러스터로 지정했다. 2008년 1단계 지원사업을 통해 국비와 시비 등 103억원을 투입해 1640억원이라는 매출 증대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2009∼2013년 2단계 사업에서 국비는 빠졌다. 시비도 15억원가량으로 줄더니 3단계 사업 예산은 7억원가량으로 더 쪼그라들었다.

변방도시가 한·중 산업단지로

이날 한은 베이징사무소는 ‘외자유치를 통해 주요 산업도시로 변모한 중국 옌청시’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천시와 대조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옌청은 1990년대 초 지역개발구를 설립했으나 부족한 교통인프라 등으로 섬유산업 외에 뚜렷한 외국인투자 유치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96년 옌청시 국영기업인 열달그룹이 기아차와 협력회사를 설립하면서 달라졌다. 폐쇄 위기에 몰린 기아차를 현대차가 인수하자 중국 당국은 둥팡자동차를 합자회사에 끌어들여 공장 건설에 나섰다. 옌청시는 단순 조립공장 외에도 관련 부품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거나 공장부지 매입금액의 80%를 지원했다. 각종 세금 면제 및 행정조치 간소화 등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기아차 1공장이 완공된 2002년 이후 외국인투자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옌청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국제공항을 건설해 한국과의 정기항공편을 신설했다. 항구 및 고속도로 건설도 추진했다.

옌청시 경제성장률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14%에 달했다. 한적한 시골도시는 중견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산둥성 옌타이, 광둥성 허이저우와 함께 한·중 산업단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옌청시정부는 최근 자동차 판매 부진 등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계 업체들에 지급보증을 통해 5억 위안(850억원)의 대출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시내 모든 교통표지판에 한글을 병기하고 별도의 한국 전담부서를 운영하는 등 철저히 ‘친한국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은 베이징사무소의 노원종 과장은 옌청시의 외자유치 성공 비결에 대해 “중앙정부와 시정부가 한국 자동차기업 유치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맞춰 각종 지원정책을 실시해 온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