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북핵 리스트 연내 제출, 영변 핵시설 폐쇄 요구할 듯

입력 2018-06-26 04:00

미국 정부가 조만간 북한에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담긴 ‘비핵화 시간표(timeline)’를 제시할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핵 전문가들은 연내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리스트 제출과 영변 핵단지 내 핵심 시설의 폐쇄가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 이행에 대한 우리의 구상을 북한에 제시할 것”이라며 “거기엔 구체적인 요구와 특정 시간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또 “우리는 그들(북한)이 선의로 움직이는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받아든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비핵화 진정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 정부 관계자의 이런 발언은 북·미 후속 협상을 지휘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맞물려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 “우리가 북한 핵 프로그램의 범위와 규모를 가능한 한 빨리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었다. 그는 이어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머지않아 북한에 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와 관련,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 조야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앞으로 2∼3개월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최소한 이 기간 내에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초기 조치의 핵심은 핵 프로그램 리스트 신고와 이에 대한 사찰 및 검증, 프런트 로딩(중대한 선제조치) 세 가지”라고 설명했다.

핵 프로그램 리스트는 향후 비핵화 로드맵을 짜는 기반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0년 말’을 비핵화 시한으로 잡고 있는 미 정부로서는 핵 프로그램 리스트를 확보해야 남은 2년 반의 세부 계획을 설계할 수 있다.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처리 문제는 북·미 간 입장차가 가장 뚜렷한 부분이다. 미국 입장에선 가장 먼저 제거하고 싶은 핵 능력이지만 북한으로선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핵 프로그램 신고가 비핵화 로드맵을 짜는 뼈대라면 눈에 보이는 비핵화 조치로는 영변 핵단지 내 핵심 시설 폐기가 우선 거론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나 2007년 북핵 6자회담의 ‘2·13 합의’는 핵시설 중에서도 핵물질을 생산·추출하는 시설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미국은 이번에도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 공장 폐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열흘 넘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건 내부 전략 수립에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미국의 압박에 밀려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정한 스케줄대로 비핵화 조치를 밟아나가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북한 매체들이 연일 미국을 향해 신뢰 구축을 강조하는 것 역시 비핵화 이행에 앞서 정세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르면 이번 주 후반쯤 북·미 접촉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북한은 매년 6월 25일이면 대미 비난을 쏟아냈지만 올해는 조용히 넘어갔다. 6·25전쟁 기념일에 맞춰 열었던 ‘미제 반대 군중집회’도 생략할 가능성이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