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로 이어지는 대기업 내부거래가 더 늘었다. 일감 몰아주기를 막는 규제를 도입하자 반짝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를 탔다. 총수 일가는 교묘하게 규제망을 피해 사각지대에서 내부거래를 지속해 왔다.
규제 대상인 계열사 내부거래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규제를 도입할 때 8조원가량이던 내부거래 금액은 지난해 14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사익편취 규제의 범위를 넓혀 그물망을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2월 ‘사익편취 규제’를 도입한 뒤 대기업집단 계열사 간 내부거래 실태를 분석해 25일 발표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규제 대상 기업 203곳,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기업 241곳의 내부거래 규모 및 비중을 조사했다.
사익편취 규제는 대기업집단 내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편법적으로 확대하거나 경영권을 승계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을 직접 보유한 상장계열사와 지분 20% 이상을 직접 보유한 비상장계열사를 대상으로 한다. 규제 대상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
문제는 규제의 ‘칼날’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계열사였다. 총수 일가가 지분 20∼30%를 직접 보유한 상장사,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계열사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자회사 등이 대표적 ‘사각지대’다. 이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공정위 조사 결과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30%인 상장사의 경우 2014년 5.3%였던 내부거래 비중이 지난해 7.1%로 높아졌다. 내부거래 규모는 5조8000억원에서 6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지분율 29∼30% 상장사만 떼어놓고 보면 내부거래 비중이 같은 기간 20.5%에서 21.5%로 증가했다. 규제를 피해 총수 일가가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맞춘 뒤 내부거래를 지속하거나 되레 늘린 것이다.
심지어 규제 대상인 기업들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11.4%에서 지난해 14.1%로 상승했다. 내부거래 규모도 7조9000억원에서 14조원으로 배가량 늘었다. 규제 대상 기업의 자회사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16.3%에서 지난해 15.1%로 소폭 감소했지만 규모는 6000억원대를 유지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로 나눠 규제를 적용한 것도 허점을 드러냈다. 공정위는 상장사의 내부 견제장치(사외이사 제도 등)가 비상장사보다 견고하다고 판단해 기준을 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이 가결되지 않은 이사회 안건 비율은 0.39%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상장사에 대한 규제 기준을 비상장사와 마찬가지로 지분율 20%로 낮춰 감시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공정위 신봉삼 기업집단국장은 “다음 달 6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특별위원회의 기업집단 분과 토론회에서 개선안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규제 비웃는 재벌…내부거래 더 늘었다
입력 2018-06-25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