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여, 이 나라를 보게… 자네의 희생 헛되지 않았어”

입력 2018-06-25 04:04
6·25전쟁 68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미군 참전용사 피트 헤일씨가 2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 앞에서 전우이자 전사자인 스펜서 헛슨필러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지훈 기자

아군 2000명 적군 1만명 사망 ‘펀치볼 전투’ 당시 분대장… 포격으로 숨진 헛슨필러 상병 추모
아이들이 가르쳐준 ‘아리랑’ 아련


1951년 9월 강원도 인제 간무봉 언덕 밑에서 군복 차림의 앳된 미군 젊은이들이 뒤엉켜 있었다. 겨우 열아홉 나이던 미 시애틀 출신 분대장 피트 헤일(86)씨도 그중 하나였다. 옆에는 3개월 전 전장에 투입된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 스펜서 헛슨필러 상병이 있었다. 상병은 당시 그보다 한 살 어렸다.

사단은 해안분지 확보를 위해 673번 고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후일 ‘펀치볼 전투’라 불린 작전이었다. 정신없이 포탄이 날아다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매 시간 반복됐다. 어느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적군의 박격포가 그들 머리 위에서 터졌다. 헤일씨는 온몸에 파편이 박히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야전병원의 침상이었다. 헛슨필러는 즉사했다.

67년이 흐른 2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백발의 노인이 된 헤일씨가 들어섰다. 그는 반듯이 접어놓은 편지를 지갑에서 조심스레 꺼내들고 전우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섰다. “헛슨필러, 알다시피 우린 전쟁을 함께했네. 전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죽음을 떠올리지만 사실 전쟁은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일이기도 해. 함께 싸우며 피를 나눈 자네와 전우들은 영원한 내 형제일세.”

헤일씨는 이날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헤일씨 부부 외에도 다른 미국 참전용사와 가족 54명이 국가보훈처의 주선으로 함께했다. 헤일씨에게는 6년 전에 이어 전쟁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그는 전쟁기념관에 도착하자마자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헛슨필러의 이름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유를 묻자 “헛슨필러의 조카에게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며 웃었다.

헛슨필러는 미 제1해병사단 제7해병대 제1대대 찰리중대 소속으로 헤일씨와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아군 2000명, 적군 1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군은 이 지역을 확보해 춘천을 방어했고 나아가 수도권을 지켜냈다.

헤일씨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나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생사가 매순간 갈리는 탓에 서로를 알아갈 시간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폭격으로 중상을 입은 그는 야전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일본과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이듬해 4월 전역했다.

헤일씨에게는 한국에서 얻은 추억이 많다.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며 배웠던 ‘아리랑’ 가락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직접 불러준 노래가사와 가락이 매우 또렷했다. 언덕으로 짐을 날라주는 대신 담배를 받아가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고 말했다.

헤일씨는 “6년 전 한국에 와보고선 놀랐다”면서 “병영에서 내려다보면 산등성이와 철도 밖에 없었던 나라가 이렇게 바뀌다니 정말 인상 깊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헛슨필러에게 쓴 편지를 이렇게 끝맺었다. “우리가 함께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 나라는 몰라보게 번창했다네. 우리가 기여한 덕도 있어. 자네의 희생은 대단했어. 자네는 절대 헛되이 죽은 게 아니야.”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