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있을 땐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아들 치료비를 위해 중국에 갔지만 거기선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2012년 미국으로 건너온 탈북민 메이 주(40·여)씨가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북한에서의 삶을 대중들에게 털어놨다. 그간 몇몇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적은 있으나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직접 얘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천포스트와 세계기독연대에 따르면 주씨는 197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0살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당국 정책에 따라 양강도 지역으로 쫓겨났다. 굶주림이 일상인 곳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구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고 했다.
특히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90년대 중후반 기근은 극에 달했다. 주씨는 자신의 딸을 죽여 배를 채운 한 이웃 아저씨 이야기를 전하며 “정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주씨의 삶도 비슷했다.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경지대를 전전하며 아등바등했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의 가정폭력이었다. 딸도 3살 되던 해 열차에 치어 죽었다.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의 부주의로 3도 화상을 입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나 약을 구할 돈이 없었다.
주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에게 돌아갔다. 아들 약값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식당 일을 알선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중국에 도착한 그는 2300달러에 중국인 농부에게 팔렸다. 농장에서 그는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 죽도록 일한 뒤엔 3200달러에 중국인의 아내로 팔려갔다. 그는 “탈북 여성들은 나처럼 노예나 신부로 팔려간다”고 했다.
2년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지만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얼마 뒤 풀려나긴 했으나 중국에서 모은 돈 1300달러를 모두 빼앗겼다. 설상가상 전 남편과 아들의 소식마저 끊겼다. 그녀는 다시 탈북을 감행했다. 주씨는 다시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돌아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그 땅에 침을 뱉은 후 한겨울 두만강을 홀로 건넜다고 증언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탈북민 메이 주씨 “고난의 행군 때 굶주린 북한, 정상이 아니었다”
입력 2018-06-25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