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완용 되더라도 한·일 국교 정상화”

입력 2018-06-24 18:30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은유적 화법으로 정치권을 들었다 놨던 인물. ‘수사(修辭)의 달인’으로 불리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한국 정치사에 유명한 말을 많이 남겼다. 그의 말에는 험난했던 40여년 정치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 김 전 총리 어록의 첫 장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일본과 국교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일자 이같이 말했다. 같은 해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으로 미국 외유를 떠나면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항상 2인자 자리에 머물던 그는 90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을 두고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80년 신군부 2인자였던 때도 “같이 걸을 때조차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서 걷는 것”이라고 2인자의 역할을 조언했던 그였다.

95년에는 “우리가 핫바지냐”는 말로 지방선거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해 충청 표심을 한데 모았다. 2002년 지방선거 때도 그는 “도지사,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기에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우리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 것 아니냐”고 ‘핫바지론’을 또 한 번 내세웠다.

2000년대 들어 정계를 떠날 때가 가까워지자 정치 인생을 회고하는 말들을 남겼다. 2001년 이인제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두고 ‘서산에 지는 해’라고 하자 그는 “나이 칠십 넘은 사람이 저물어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2004년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는 “노병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고 자평했다. 2011년에는 새해인사를 온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