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서울 서소문 본관에서 소장품 기획전 ‘디지털 프롬나드’를 갖고 있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어떤 미술관이든 10년 단위의 큰 생일을 맞으면 과거를 반추하고 나아갈 방향을 짚기 위해 소장품전을 기획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단순히 소장품만 보여주지 않는다. 더 욕심을 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소장품과 미술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 신진 작가의 커미션(작업을 주문하는 것) 작품도 함께 전시해 투 트랙으로 구성했다.
둘을 묶는 연결고리는 ‘산책’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프롬나드(promenade)’다. 소장품 4700여점 가운데 자연과 산책을 키워드로 한 30점을 골랐다. 또 박기진 배윤환 최수정 등 신진 작가 10명이 신작을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 산책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경험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가, 미래에도 인간은 여전히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가’를 탐험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요즘, 예술이 가야 할 바를 과거를 뜻하는 소장품과 미래를 의미하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연결해 고민하겠다는 전시다.
하지만 투 트랙의 전시는 정교하지 못한 기획과 디스플레이 방식 탓에 상호 침투하거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겉돈다.
소장품 30선의 작가는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 작고 작가에서부터 시작해 생존 작가도 박서보 성능경 김호득 이불 구동희 등 40∼80대로 세대 간 스펙트럼이 넓다. 그러다 보니 같은 자연도 김환기의 추상, 유영국의 반구상, 이대원의 표현주의 등 표현기법이 다양하다. 분단의 상처를 녹인 이세현의 ‘붉은 산수’, 페미니즘 풍경으로 해석되는 이숙자의 보리밭 등 주제별로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소장품은 어떤 맥락도 없이 2층의 2개 전시공간에 흩뿌리듯 진열됐다. 박생광의 ‘무속’은 전시 주제와 맞지 않는데도 1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맨 앞에 나왔다.
크기도 작아 존재감이 약한 소장품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지름 2.5m의 비정형 공을 만들고 거기서 사운드와 땀을 연상시키는 수증기가 나오는 박기진의 설치작품 ‘공’이 주인공처럼 들어차있다. 조영각의 신작 ‘깊은 숨’은 별도 공간에 마련됐는데, 인공지능 딥러닝, 빅데이터 등을 이용해 소장품에 대한 관객의 느낌을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젊은 작가들의 커미션 작품들은 음성인식과 로보네틱스, 위치 기반 영상 등 최신 기술을 망라해 동시대 미디어 아트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문제는 기라성 같은 작가의 소장품 30선과 매치가 안 된다는 점이다. 소장품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바에야 둘을 따로 전시하는 게 맞다. 소장품전에 나온 한 중견 작가는 24일 “두 전시 간 연계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30점 소장품은 미끼이고, 신작 10점이 주인공 같은 전시”라고 평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전시 리뷰-‘디지털 프롬나드’] ‘산책’ 키워드로 미술의 과거·미래 조명
입력 2018-06-25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