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월드컵 신종 팬의 탄생, 대한민국 대신 축구에 열광

입력 2018-06-23 04:01

3패로 끝날지도 모른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시선이다. 1승을 노린 스웨덴과의 1차전은 ‘0대 1’ 패배로 끝났다. 남은 상대는 세계랭킹 1위 독일과 그런 독일을 이긴 멕시코다. 한국 대표팀의 부진으로 월드컵 열기가 시들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인기는 여전하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4년에 한 번 모여 펼치는 ‘축구 잔치’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해외축구를 보며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들은 한국팀의 부진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대학생 김광엽(26)씨는 월드컵 개막전을 포함해 21일까지 열린 20경기 가운데 18경기를 챙겨봤다. 시험기간이 겹쳤지만 월드컵을 놓칠 수 없어 중계를 틀어놓고 공부했다. 그는 “시험은 매학기 있지만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이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보다는 세계적인 스타들의 색다른 축구를 볼 수 있는 장이다. 그는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네이마르(브라질) 같은 선수들이 소속 축구팀에서 뛰는 건 매주 볼 수 있지만 국가대표 주축으로 뛰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다”며 “세계의 별들 중 누가 최후에 살아남을지 보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김씨가 가장 응원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축구팀 아스날의 팬인데, 독일팀에 아스날 소속 선수 메수트 외질이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아무래도 우승이 힘들어 보이니 가능성 있는 독일을 더 응원하게 된다”고 웃었다.

공익근무요원 김민준(22)씨도 거의 모든 경기를 봤다.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팬이다. 김씨는 “한국도 응원하지만 큰 기대는 안 한다”며 “평소에 해외축구를 즐겨보다 보니 뛰어난 선수들의 플레이에 매료됐다. 이 선수들이 얼마나 잘할지 지켜보는 게 월드컵의 재미”라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시간에는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 관련 검색어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오른다. 네이버에선 22일 오전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가 1위였다. 전날 오후에는 ‘덴마크 호주’가 1위, 다음 경기인 ‘프랑스 페루’가 8위였다. 지난 20일에는 ‘모로코’와 ‘포르투갈 모로코’가 네이버와 다음에서 각각 1위였다.

중계시간도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경기들이 한국시간으로 오후 7시부터 밤 12시 사이에 열린다. 새벽 3시 경기가 있지만 많진 않다. 직장인 안형태(39)씨는 “오후 9시 경기와 밤 12시 경기는 거의 다 챙겨봤다”고 말했다. 그는 약체로 꼽힌 아이슬란드와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의 1대 1 무승부 경기를 가장 재미있었던 경기로 꼽았다. 안씨는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플레이야말로 스포츠와 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대부분이 축구에 대해 잘 몰랐고 이기는 축구를 좋아했다”며 “하지만 유럽리그 등을 접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 늘면서 축구 자체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안목이 높아진 팬들은 축구가 개인 능력과 팀 전략 등 복합적인 요인이 녹아든 게임이라는 걸 안다”며 “국가대표도 응원하겠지만 ‘실력 있는 팀이 이긴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