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공정위·검찰의 전속고발권 30년 전쟁, 검찰 승리로 종전?

입력 2018-06-22 04:02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이 전속고발권 전면폐지에 합의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로써 담합 등 불공정행위의 고발권을 둘러싼 두 기관의 ‘30년 전쟁’이 검찰 승리로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까지 달라는 검찰과 리니언시만큼은 줄 수 없다는 공정위의 간극은 여전히 넓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공정위 내부 비리 조사에 착수한 배경이 ‘리니언시 주도권 다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치다

검찰이 전날 공정위를 압수수색한 배경에는 부영 사건 봐주기 의혹이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부영 이중근 회장과 관련 법인의 공시자료 허위제출, 차명계좌 보유 혐의를 확인했다. 결과론적으로 이 회장과 관련법인 모두 고발됐다. 다만 검찰은 공정위가 지난해 법인까지 고발할 수 있었는데도 이 회장만 고발하고 올해 3월에 뒤늦게 법인을 고발한데 의문을 갖고 있다.

부영 사건 봐주기 의혹에는 검찰 출신 전관변호사가 등장한다. 지난해 7월 이 회장 고발을 결정한 공정위 의결서를 보면 변호인으로 김봉석 변호사가 적시돼 있다. 김 변호사는 2015년 1월부터 1년간 공정위 파견검사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고검을 거쳐 지난해 1월 퇴직한 그는 부영 사건을 맡았다. 공정위 안팎에선 김 변호사가 부영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 직원들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부영 변호인을 맡은 것은 맞지만 공정위 직원들과 사건 절차 문의 외에는 통화한 적이 없다”고 로비 의혹을 부인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월부터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무리한 엮기인가

검찰이 기업 봐주기 의혹 수사를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 등의 ‘전관 취업’과 엮는 것은 무리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기업 봐주기’와 ‘전관 취업 알선 의혹’ 자체로는 검찰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혐의의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실제 지 부위원장이 자문위원으로 취업했던 중소기업중앙회는 협동조합이다.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기관이 아니다. 중소기업 권익 향상을 위한 조직으로 대기업 봐주기와 거리가 있다.

공정위는 21일 해명자료를 통해 “지 부위원장이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 없이 불법으로 재취업한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30년 전쟁’ 막 내리나

검찰의 공정위 압수수색 이면에는 전속고발권, 리니언시가 자리 잡고 있다.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두 기관의 싸움은 오래 됐다. 1981년 공정거래법이 생기면서 담합 등 주요 불공정행위의 조사 권한이 공정위에 주어졌다.

그러나 9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두고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공정위는 식품 가공날짜를 위반한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청을 거부했다. 그 직후 검찰은 공정위 압수수색을 통해 현직 국장 2명을 뇌물 혐의로 구속했다. 공정위 국장 구속사태 이후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구할 수 있는 ‘고발요청권한’이 주어졌다.

검찰은 최근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논의에서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와 함께 형사적 리니언시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 요구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담합을 자진신고하려는 기업은 과징금 면제를 위해 공정위에, 형사 고발을 면하기 위해 검찰에 각각 자수해야 한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를 통해 모든 담합 사건을 검찰과 함께 조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대신 리니언시 권한은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공정위와 검찰 모두에 해야 한다면 리니언시가 위축될 수 있다”면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리니언시 위축으로 담합 적발이 지금보다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가 조사하는 사건이 캐비닛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모른다”면서 “미국 사례만 봐도 담합 조사는 검찰이 주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22일부터 공정위 관계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