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에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52·사진) 관장은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50년맞이 중기 운영혁신계획을 발표한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없던 일정이라, 연임을 위한 마리 관장의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월 13일로 3년 임기가 끝나는 마리 관장은 연초 연임 의지를 공표한 바 있다.
국민일보는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을 포함해 미술계 각 분야 전문가 18명을 상대로 마리 관장의 2년 6개월 업무에 대한 중간 평가와 함께 연임 찬반 의사를 물었다. 조사 결과 연임 반대가 9표, 찬성 5표, 중립(보류) 4표가 나왔다.
다수를 점한 반대론자는 무엇보다 ‘원죄’를 들었다. ‘미술계의 히딩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모 결과를 무산시키면서 석연치 않게 꺼낸 카드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미술기획자 A씨는 21일 “잘했냐의 여부 이전에 정당한 자격을 부여할 수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미술의 계보 정리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우선 과제이며, 국위 선양은 그다음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미술사가 B씨는 “사실상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후 시작돼 30여년밖에 안 된다. 아직은 기초 다지기 단계여서 실패해도 우리가 쌓아야 우리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리 관장 재임 기간을 “잃어버린 3년”이라고 표현했다. 미술관장 출신의 C씨는 “해외 전시의 국내 유입 증가는 눈에 띈다”면서 “하지만 국내 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어 우리 미술사와의 맥락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피력했다.
폴란드 작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레바논 작가 아크람 자타리 등 마리 관장의 해외 네트워크에 의한 전시 성사가 있었다. 하지만 전임 관장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 전시에 비하면 ‘체급’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 등 공언했던 전시들이 무산된 점 등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3명이나 나왔다.
언어 문제도 반대의 큰 이유다. 취임 초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D씨는 “떠듬떠듬하더라도 우리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말도 좀 아는 사람을 데려왔어야 했다”며 “한국 미술을 모르는데 중기 비전을 어떻게 세울 수 있냐”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연말 청주관 개관으로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을 포함한 4분관 체제를 앞두고 있다. 이런 마당에 1관장 1학예실장의 전근대적인 중앙집권적 기구 개편을 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연임을 찬성한 미술관장 출신의 E씨도 4분관 시대에 대비한 승진 인사를 과제로 제안했다.
찬성론자들은 외국인 수장이 오면서 서울대와 홍대 출신으로 갈렸던 ‘패거리 문화’가 사라진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과거에는 인사뿐 아니라 컬렉션 등에서 진영 혹은 학연이 개입됐었다. 마리 관장의 성과로는 국제심포지엄 개최를 통한 해외 네트워크 구축, 출판 연구팀 설치 등이 거론됐다. 중견 작가인 F씨는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정상화에 기여를 많이 했다”면서 “권한도 분산하고 있고, 과거 형식적이던 운영자문회의도 지금은 활발히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3년은 짧으니 연임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찬성론의 주요 논지였다. 미술관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관행이 현 정권에서 반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기 계획 발표를 지켜보고 평가하겠다는 의견과 ‘촛불 대통령’의 시대에 맞게 차제에 정치권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기관장 선발의 바람직한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국민일보 설문에 응해 주신 분>
기혜경 서울시립북서울관장·김복기 경기대 교수·김성호 전시기획자·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김영원 조각가·김현숙 덕성여대 교수·박경근 작가·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서진수 강남대 교수·안규철 작가·오광수 뮤지엄산관장·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임옥상 작가·정현 작가·조은정 미술평론가·최열 미술평론가·하계훈 미술평론가·홍경한 전시기획자 (가나다순)
전문가 18명 중 9명 “잃어버린 3년… 마리 관장 연임 반대”
입력 2018-06-22 04:01 수정 2018-06-2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