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 뒤 만들어진 새 교과서 가이드라인에 ‘대한민국이 유엔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받았다’는 부분이 삭제됐다. 교육과정 개정안에선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쳐지는 등 진보 역사학계 주장이 대거 반영됐다. 교육부가 정권 코드에 맞춰 역사적 사실을 이리저리 바꾸고 있다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초등 사회과·중등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22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21일 밝혔다. 국정 역사 교과서가 폐기되면서 국정화를 전제로 만들었던 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을 바꾸는 작업이다. 이번 개정은 2020년 교과서에 반영된다. 중·고교와 용어 통일을 위해 초등 사회 교육과정도 개정한다. 교육과정은 교과목과 수업, 평가방식 등 학교 교육의 기준이 되는 규정을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은 새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로 수정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자유 평등 인권 복지 등 다양한 구성요소 중 일부만 의미하는 협소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보수 진영은 자유가 빠지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 구분이 모호해진다고 반발한다.
개정안은 1948년 총선거와 헌법 공포, 정부 수립 선포 과정의 역사적 의미를 ‘대한민국 수립’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했다. 교육부는 “1948년 건국 입장을 택하면 항일투쟁의 역사와 임시정부 법통을 부인하는 우를 범한다”란 진보 역사학계 입장을 채택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국정화 추진 당시 교육부는 “주권과 영토, 국민이 갖춰진 실질적인 국가가 탄생한 시점이 1948년”이라는 보수 역사학계 주장을 받아들여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썼다. 정권이 바뀌자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교육과정과 함께 교과서 제작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는 집필기준에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내용이 삭제됐다. 종전 집필기준에선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을 서술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 대목에 대한 판단을 교과서 집필진에게 넘겼다. 진보 역사학계는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한반도 남쪽)에 한정된 유일 합법정부로, 보수 역사학계는 남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 도발 부분도 집필기준에서 빼고 집필진이 재량껏 기술하도록 맡기기로 했다. 교육부는 집필기준에 이를 일일이 열거하면 집필에 불필요한 제약을 준다고 주장했다. 동북공정도 집필기준에서 뺐다. 동북공정 용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동아시아 갈등이 동북공정으로 한정돼 교과서에 서술될 우려가 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는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면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를 거친 뒤 7월 말 최종 확정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자유 빼고, 정부 빼고. 진보색 짙어진 2020년 중·고 역사교과서
입력 2018-06-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