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생명력을] ‘오직 믿음’은 예수만이 구원자임을 믿는 것

입력 2018-06-25 00:00 수정 2018-06-27 18:23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자이자 중보자이다. 이탈리아 화가 팔마 일 지오바네의 ‘그리스도의 베데스다 연못 치료’(1592년). 국민일보DB
도소 도시의 ‘돌에 맞아죽는 스데반’(1525년). 스데반은 ‘오직 믿음에 의한 그리스도의 의’를 전파하다가 최초의 순교자가 됐다. 국민일보DB
십자가 복음을 외친 종교개혁 전통을 지닌 스위스 빌트하우스 전경. 국민일보DB
장종현 목사
‘오직 믿음(sola fide)’은 구원교리의 핵심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선행도 필요하다’는 중세 교회의 주장에 맞섰다.

우려되는 현상은 최근 일부 신학자들이 ‘이신칭의 교리가 인간을 도덕적으로 나태하게 만든다’며 이 교리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이신칭의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울 서신의 중요 이슈는 이신칭의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없애는 문제였다’는 논리로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신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 이신칭의를 외침으로써 참된 교회를 지켰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과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이신칭의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희생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시도에 맞서 ‘오직 믿음’을 더욱 힘 있게 외쳐야 한다.

오직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을 때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서 부패했다. 모든 사람은 타락해 무능한 죄인이 됐다. 그래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아래 있다. 스스로 의와 구원에 이를 수도 없다. 로마서 3장 10절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며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한다.

앞서 봤듯 인간은 타락했다. 그래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부활을 통해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영생을 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구원받을 수 있다. 로마서 5장 10절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한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한다.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가 죄와 죽음,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시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류를 화목하게 할 유일한 중보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이라는 고백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인류에 주신 유일한 구원자이며 중보자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분만을 신뢰함으로써 그분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의와 구원에 이르려는 신실한 자세이다.

의인으로 선언하시는 하나님 은혜

칼뱅의 지적처럼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다. 자신의 노력으론 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와 구원을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하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는 것이 칭의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람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것은 행위의 의를 배제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이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죄인이 아닌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칭의를 단순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받으심, 곧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영접하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 칭의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의 심판 아래 있다. 따라서 사람 편에서의 문제 해결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들의 죄를 전가시켜 대신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

그리스도는 완전한 순종과 희생을 통해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불순종하고 거역했던 모든 법을 우리 대신 온전하게 지키심으로 우리를 위한 의의 가능성을 마련하셨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이 성취한 의를 우리에게 돌리신다. 그리고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하신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칼뱅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됨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여겼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이신칭의,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라

의의 근거는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돌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질 때만 구원이 이뤄진다. 루터는 “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고 “우리 안에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것은 우리 밖, 하나님 안에 있다”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전가이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그리스도의 의라는 옷이 우리에게 입혀진 것이다. 이 옷은 믿는 자의 모든 죄와 부끄러움을 가리는 옷이다. 예수님의 혼인잔치 비유에서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예복이다. 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예복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왕의 잔치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이렇게 구원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오직 믿음에 의한 그리스도의 의’라는 진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고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종현 목사 (백석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sh10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