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장관의 ‘합의문’이라는 어색한 형태로 발표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중재자처럼 서명 과정을 함께했다. 검찰과 경찰의 상급기관인 두 부처가 ‘합의’를 해야 할 만큼 수사권은 민감한 문제였다. 두 기관의 이해관계가 첨예할 뿐 아니라 같은 사안으로 두 번 조사받는 상황 등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수사권 조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경찰권 확대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검찰의 힘이 막강했고, 그것을 무릅쓰고 힘을 실어주기에는 경찰의 실력이 부족했다. 이번에 조정안이 도출된 것은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안을 실행해도 될 만큼 여건이 성숙했는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핵심은 수사 지휘권과 종결권이었다. 검찰은 수사의 모든 단계에서 경찰을 지휘할 수 있었고, 경찰은 무혐의로 판단되는 것까지 모든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야 했다. 조정안은 이 수직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꿔 검찰의 수사지휘를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 권한을 줬다. 수사권 논의는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만큼 비대해진 검찰의 힘, 그것을 잘못 휘둘러온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시작됐다. 경찰의 역량이 충분히 성숙했으니 권한을 더 주자는 차원이 결코 아닌데, 이런 어부지리를 누릴 자격을 경찰은 과연 갖췄는가. 드루킹 수사 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조정안이 검찰에 ‘사후 통제권’을 부여한 것은 이런 우려를 감안한 조치이며 이는 타당하다. 검찰은 보완수사요구권, 징계요구권, 시정조치요구권 등을 통해 경찰 수사를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다.
안전장치를 갖추긴 했지만 경찰을 감독하는 힘은 지금보다 많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의 지휘가 경찰 수사의 부정과 왜곡을 상당부분 차단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정안처럼 경찰에 자율적 수사권을 주려면 제도적 보완이 수반돼야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과 행정경찰·수사경찰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는 반드시 병행돼야 할 과제다. 우리는 유례가 드문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체계를 갖고 있다. 치안 유지부터 범죄 수사까지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지휘라인은 일원화돼 있다. 행정경찰인 경찰서장이 수사도 관장한다. 이런 조직이 수사종결권까지 가질 경우 검찰 못지않은 권력집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자치경찰제로 경찰권을 분산시켜 비대화를 막고, 행정·수사 분리를 통해 수사 독립성을 강화하고, 공수처를 신설해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완성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70년 만에 수사기관 지형을 바꾸는 일이다. 치열한 검토를 거쳐 최선의 길을 찾아내기 바란다.
[사설] 걱정 앞서는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공수처 병행돼야
입력 2018-06-22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