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흔적] 자립, 밥이라는 사랑이 남긴 흔적

입력 2018-06-23 00:01
잠비아 나칸졸리 마을 주민들은 농촌지역 영·유아들의 영양 균형을 위해 자급자족한 농작물로 영양죽을 만든다. 호박잎, 마, 옥수숫가루, 땅콩가루를 이용해 만든 영양죽.
“부위노(잘 지내요)?”라고 인사하는 나칸졸리 마을 아이들.
나칸졸리 마을 주민들이 보건소 앞에서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다.
임신부가 아기를 출산한 후 쉴 수 있는 보건소 내 병실.
잠비아 차부마을의 양배추밭.
아프리카로 가는 여행길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직항이 없기에 3번 정도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고 그때마다 2시간에서 6시간까지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 기다림에 익숙해질 때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을 배운다.

지난 10일 홍콩 공항에서 잠비아의 뭄부와(Mumbwa)에 가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남아프리카항공의 스튜어디스는 레게머리를 하고 있었다. 3만8412피트 상공에서 남아프리카 음악을 들으며 그곳의 삶이 궁금해졌다. ‘밀알의 기적 모니터링 방문단’의 일원으로 뭄부와 사업장에 가는 길이었다. 13시간의 비행이 끝이 아니었다. 남아공에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까지 2시간 비행 후 다시 육로로 3시간 이동해 사업장에 도착했다. 국제NGO 한국 월드비전이 2006년부터 지원하고 있는 이곳은 잠비아 중서부에 있다.

한 마을 자립은 한 아이의 변화

월드비전은 대단위 지역 개발사업(ADP·Area Development Program)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과 지역의 온전한 자립이 목적이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속해서 아동들의 복지에 초점을 두는 사업을 펼친다. 즉 아동의 생존과 성장, 보건위생, 기초교육과 영적·정서적 성장, 아동이 속한 가정의 생계유지 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

지난 11일 오렌지색 월드비전 로고가 붙은 흰색 지프를 타고 전형적인 농촌 마을 나칸졸리의 시골길을 지날 때,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반갑게 차량을 향해 손짓하며 외쳤다. “부위노(잘 지내요)?” “부위노 부안지(난 잘 지내요. 당신은요)?” 아이들이 차량을 향해 점프하며 손짓하는 모습이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 보였다. 잠시 후 만난 주민들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칸졸리에서 월드비전이란 이름은 매우 친숙했다.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켜 준 이름이었다.

나칸졸리 보건소에서 두 아이의 엄마인 마거릿 치와웨를 만났다. 그는 월드비전이 나칸졸리 보건소 지원을 시작하기 전, 첫아이를 보건소에서 낳았고 둘째는 지원 후에 낳았다. 그 차이는 컸다. “첫째 땐 만삭이 됐을 때도 물을 길어야 했고 출산 후에도 계속 물을 길어야 했습니다. 침대도 아닌 보건소의 차가운 바닥에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보건소에서 출산할 때는 침대에서 아이를 낳았고 식수시설을 제공받아 물을 길으러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그는 보건교육과 의료시설 지원을 통해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임신 중 일상생활과 아기의 배변훈련, 영양죽 만들기 등을 배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순조롭게 출산했고 교육받은 대로 양육할 수 있었지요. 너무나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나칸졸리엔 1만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예전엔 임신부의 80%가 집에서 출산했으나 현재는 80%가 보건소에서 출산한다. 지난달엔 이곳에서 28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출산 후 산모와 신생아 생존율은 100%이다.

현지 월드비전 스태프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지역사회의 가장 큰 변화로 ‘생각의 변화’를 꼽았다. 아이를 학교에 왜 보내야 하는지, 아플 때 왜 병원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지역사회 모자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레베카 템보는 “엄마들이 보건소에서 임신과 관련한 정보와 의료지원을 받고 아이를 순산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그러나 예방할 수 있는데 정보가 없어 목숨을 잃는 경우, 보건소가 멀거나 교육받지 못해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마음이 아프다. 한정된 자원으로 지원을 못 해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자원봉사자 그룹 SMAGS(Safe Motherhood Action Groups)를 교육해 모자보건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사회에서 선정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임신부, 신생아 및 아동 건강에 관련된 교육을 받는다. 이후 6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영양 부족이 있는 아동, 저체중과 5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보건사업을 진행한다. 월드비전이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해 활용하는 것은 지역에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월드비전은 지역사회가 자립하면 모든 것을 지역사회에 이관하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지역에서 개발 사업을 시작한다. 따라서 개발 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월드비전의 지원 없이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다리가 된다. 월드비전이 지역사회에 남긴 흔적은 사랑이다. 사랑의 흔적은 ‘자립’이라는 선물로 마을에 계속 남을 것이다.

흔적은 기억이 된다

나칸졸리 주민들을 통해 사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출산 후 이어진 모자보건 교육을 통해 엄마들의 생각이 변하고 삶이 달라졌다. 보건소 앞마당에서 3∼4명의 엄마가 월드비전을 통해 배운 대로 영양죽 만들기를 시연했다. 이들은 주변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호박 고구마 옥수숫가루 호박잎 땅콩 마 등으로 면역력을 강화해 주는 영양죽을 손쉽게 만들어 보였다. 생후 6개월부터 모유수유와 병행하면서 먹일 수 있는 영양 이유식이다.

호박으로 영양죽을 만든 한 엄마는 “호박 껍질을 벗기고 옥수숫가루와 땅콩가루를 넣고 끓이면 면역력을 높이는 죽을 만들 수 있다”며 “월드비전 자원봉사자들에게 교육받기 전엔 이 작물들이 영양학적으로 아기나 산모에게 좋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재료는 시장에 가거나 멀리 가서 사올 필요가 없다. 다 여기서 기르는 작물들”이라며 “아이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 체중계가 고장 날 정도”라며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교육이 지식 습득이 아닌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피터 필립시반다 보건소 전문의는 “월드비전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며 “우리에게 사랑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 담당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바꿔 놓았고 임신부에겐 의료혜택을 줬으며 영·유아의 건강상태를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또 예전엔 화장실이 없어 주민들이 아무 데서나 용변을 봤는데 월드비전의 챔피언 프로그램을 통해 화장실 사용의 중요성도 교육했지요. 현재 1172개 가정에 화장실을 설치했습니다.”

뭄부와 지역은 천천히 삶의 질이 변화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은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사랑을 전해주고 또 그 사랑이 필요한 곳으로 떠나는 ‘선한 이웃’처럼 예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겠다.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이 시작이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 “우린 돈 열리는 나무 갖게 됐다”
농작물 재배로 풍족해진 삶


아프리카에선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식수뿐 아니라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수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다수 주민이 강수에 의존하는 전통 농업에 종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잠비아 뭄부와 지역의 차부마을은 토양이 비옥하지만, 전통적인 경작법으로 생산성이 낮아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어려운 곳이다.

국제NGO 월드비전이 종자 사업과 식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곳을 지난 11일 방문했을 때 마을주민들은 지폐가 주렁주렁 달린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의 노래’를 했다. “이제 밭이 생겼네. 농작물을 팔아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네. 우린 돈이 열리는 나무를 갖게 됐네”라는 내용이었다.

차부마을엔 450명(75가구)이 거주한다. 월드비전은 지난해 9월 마을 중심지 5곳에 수도시설을 만들어 농수 공급을 가능하게 했고 농작물 재배 교육을 했다. 현장에서 만난 차부마을의 이장은 월드비전의 식수시스템 공급으로 안전한 물을 마시게 됐고 농수 공급으로 마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생산량이 증가해 가계 수입이 늘어 아이들이 일하지 않아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수입이 늘어 다른 지출이 가능해졌습니다.”

농장에서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자즈 파칸드라는 “처음엔 지역주민들과 공동작업장에서 감자 수박 고추 양파 양배추 등의 재배법을 배웠다. 이후 농지를 배분 받아 현재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며 “지금은 토마토를 팔아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 저축까지 할 수 있게 돼 삶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뭄부와(잠비아)=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