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미흡 주 52시간 결국 처벌 유예, 시장 혼란 불가피

입력 2018-06-21 04:02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첫 번째)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이 총리는 다음 달부터 실시되는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과 관련한 처벌을 6개월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 총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뉴시스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6개월의 계도·처벌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다. 기업의 준비, 정부의 제도 안착 지원이 모두 미흡했다는 반성에 한발 물러선 셈이다.

하지만 연착륙 기간을 갖더라도 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시간 위반을 적발하면 사법 당국에 송치해야 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 사법 당국이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6개월 처벌 유예’는 물 건너간다. 때문에 ‘유예 카드’가 구체적 지침이나 뒷받침 없이 현재 수준에 그친다면 ‘무늬만 유예’라는 비판도 나온다. 근로자들만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근로시간 단축 관련 단속 및 처벌 6개월 유예 제안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며 “다음 주 경제장관회의에서 정식 의제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개정 근로기준법 처리가 급격하게 이뤄져 이에 대비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경영계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다만 이 총리는 “시행 자체를 유예하는 건 어렵다”며 “법은 법대로 시행하되 연착륙을 위한 계도기간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정청은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도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단축 유예를 주장해 온 경영계는 환영한다. 경총 관계자는 “협회가 건의한 6개월 계도기간에 대해 정부가 긍정적 입장을 내놓아 근로시간 단축의 성공적이고 조속한 안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혼선은 불가피하다. 근로시간을 위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상황은 그대로다. 근로시간 위반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근로자가 사업주를 고발하면 사법 당국의 수사로 이어진다. 검찰과 법원이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당정청이 내놓은 ‘6개월 처벌 유예’ 카드는 무용지물이 된다. 행정부가 처벌 유예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처벌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사업주가 법을 위반하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6개월 동안 기업의 준비가 완전하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2월 28일 개정 근로기준법이 통과된 이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간담회를 370회 가졌고, 830회에 걸쳐 현장 방문을 했다. 그런데도 기업 10곳 가운데 8곳은 근로시간 단축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가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 3700곳을 조사했더니 신규 인력을 충원했거나 충원할 계획이 있는 기업은 750곳(20.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근로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내고 “단계적 시행으로 기업의 편의를 봐준 입법인데, 300인 이상 중견기업이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은 허튼 핑계”라고 꼬집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최승욱 권기석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