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으로는 양호하지만 한국 경제는 여러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년 이상 한국 경제를 연구·분석해 온 랜달 존스(사진) 한국담당관이 지금 상황을 요약해 남긴 총평이다. 수출에 의존해 단기적 경기 회복에 성공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고령화 대응을 위한 증세 등을 권고안으로 제시했다.
OECD는 20일 ‘한국 경제 보고서’를 발간하고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3.0%로 전망했다. 건설부문 성장세가 최근 둔화되고 있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 증가세가 이를 상쇄한다고 진단했다. 다만 수출이 이끄는 경기 회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존스 담당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한국의 성장동력이 됐던 수출 성장세는 2011년 이후 둔화되고 있고, 대기업의 낙수효과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올해로 63세인 존스 담당관은 정년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한국 경제에 던지는 쓴소리다.
그의 우려는 지나치게 대기업에 치우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대기업에 인력 등 경제적 자원이 집중되면서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980년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54% 수준이었다. 이 수치는 2014년 32%까지 떨어졌다. 네덜란드나 에스토니아 덴마크의 중소기업 생산성이 대기업의 80%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는 근로자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지난 1분기 소득분배지표가 악화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고용의 77%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과제다. OECD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계기업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시장에서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고 진단했다. 존스 담당관은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퇴출되면 인적자본과 다른 자원이 보다 혁신적인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고 부족한 연구·개발(R&D)을 늘려 중소기업이 혁신에 나서도록 자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벌 경영 구조도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동안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재벌들은 순환출자 구조를 이용해 왔다. 총수 일가가 그룹 내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이 계열사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그룹 내 나머지 계열사들이 낸 수익이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주요 계열사로 옮겨가면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분배되고 있다. 존스 담당관은 “각 회사는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한국의 이런 기업 지배구조는 인도보다 후진적”이라고 질타했다. OECD는 순환출자 철폐, 사외이사 독립성·역할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OECD는 장기요양과 의료, 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적 지출 비중이 현재 GDP 대비 10% 수준에서 2060년 26% 수준까지 뛸 것으로 관측했다.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존스 담당관은 부가가치세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10%인 부가가치세율을 OECD 회원국 평균인 19%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OECD는 한국이 당장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고 봤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0.50% 포인트까지 벌어지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자본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존스 담당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에 머물고 있는 만큼 급박하게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존스 담당관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데이터를 수집한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미친 영향을 단정하기 이르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인상 효과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Wide & deep] 20여년 한국경제 연구한 OECD 랜달 존스의 마지막 쓴소리
입력 2018-06-21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