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비 없이 작업하다… 다문화 가장의 안타까운 추락사

입력 2018-06-21 04:04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아파트 25층 옥상에서 작업하던 아파트 관리업체 소속 직원이 추락해 숨졌다. 안전불감증이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50대 가장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20일 경기도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9시40분쯤 부천시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환풍기 교체 작업을 하던 A씨(51)가 작업 도중 60m 아래로 떨어졌다. 환풍기 교체는 숙련공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찰 조사 결과 사고 당시 A씨는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작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서울 소재 아파트 관리업체 소속으로 전기 및 설비 담당이었다. 하지만 사고 당일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B씨(70)로부터 담당 업무와는 상관 없는 옥상 환풍기 교체 지시를 받고 다른 직원 2명과 현장으로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경찰은 A씨에게 안전장비를 갖추게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한 B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A씨는 13년 전 필리핀 국적의 아내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다문화가정의 가장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인 첫째·둘째아들에 이어 지난해 늦둥이 아들까지 얻어 기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교대 방식으로 일하는 도중에도 필리핀에서 시집와 한국말이 서툰 아내 대신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는 등 가정적인 아버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유족들은 “늦둥이의 돌잔치가 이번 주 토요일(23일)”이라며 “회사가 고층에서 작업을 시켜놓고도 몸을 묶는 로프 등 기본적인 안전도구도 지급하지 않아 사실상 안전사고를 방치한 셈”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함께 있던 다른 2명의 직원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이 없었다고 진술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A씨의 부검 결과가 나오면 B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천=정창교 기자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