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감사는 기관장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2인자’다. 채용비리와 같은 내부 비위를 면밀히 감시하라고 억대 연봉을 준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 감사의 평균 연봉은 1억5012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몸값이 높은 데 반해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기획재정부가 19일 발표한 2017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보면 평가대상 감사 22명 중 ‘우수’를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우수 사례도 나왔던 지난해 감사 평가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반면 최하위인 ‘미흡’은 6명으로 2016년 평가보다 3배 늘었다.
감사가 제대로 일을 못한 결과는 공공기관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채용비리가 적발된 곳은 1∼2등급의 하향 조정을 받았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만 해도 S부터 E까지의 6개 등급 가운데 C(보통)등급을 받았지만 올해 강원랜드와 연루된 채용비리 사태가 불거지면서 등급이 하락했다. 최하위에 준하는 D(미흡)등급에 그쳤다. D등급을 받으면 기관장 경고 조치는 물론 해임도 가능하다.
감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미흡한 자격 요건이 꼽힌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감사의 자격 요건은 ‘업무 수행에 필요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공공기관 단위에서 규정이 있지만 역시 ‘결격 사유’만 존재한다.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지를 명시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권 인사를 비롯해 낙하산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감사의 경우 (채용) 형식만 갖출 뿐 위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기재부가 감사 평가 제도를 아예 바꾸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점이 작용했다. 3년의 임기 중 1번만 하도록 규정돼 있던 감사 평가를 매년 실시하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평가 등급도 현행 ‘우수’ ‘보통’ ‘미흡’ 3단계에서 6단계로 세분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평가 지표를 차별화해 변별력을 갖추는 방안도 내놨다. 현행 각각 10점인 전문성과 윤리·독립성 평가 점수를 각각 25점으로 배 이상 상향키로 했다. 기관평가 결과에 100% 좌우되던 감사의 성과급도 조정 대상이다. 앞으로는 기관 평가 50%에 감사 평가 50%를 반영해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올해 평가부터는 사회적 가치를 더욱 중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일자리, 윤리경영, 균등한 기회 등 5개 세부 지표를 만들어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공공기관의 혁신 노력이 생태계 마련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명박정부 당시 자원외교로 경영이 악화된 에너지 공기업 3곳의 평가 결과는 지난해와 사뭇 달라졌다. 한국가스공사는 종합평가 결과, D등급에서 C등급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을 줄이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 위주로 가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 덕분에 경영상황이 개선됐다. 반면 무리한 해외투자 여파가 가시지 않은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D등급에 머물렀다.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합병하라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든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C등급에서 D등급으로 떨어졌다. 대한석탄공사는 올해도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평균 연봉 1억5012만원인 공공기관 감사 22명 중 우수 평가는 0
입력 2018-06-20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