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첫발도 떼지 못하고 마비 상태에 빠졌다. 전원회의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에 참여하는 근로자위원 9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논의를 거부했다. 양대 노총은 ‘산입범위 확대’를 뼈대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당장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할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졸속 심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최저임금위는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서 ‘2019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첫 전원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근로자위원이 모두 불참하면서 사실상 첫 단추도 꿰지 못했다. 류장수 위원장을 포함한 공익위원 8명과 사용자위원 7명만 회의에 참석했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류 위원장은 “노동계 근로자위원 대표들이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른 시일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원회의 파행은 예견된 사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추천한 근로자위원들은 지난달 말에 여야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를 포함키로 합의하자 ‘최저임금위 보이콧’을 선언했다. 산입범위가 확대되면 그만큼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낮아진다. 근로자에게 불리하다.
지난 8일 예정됐던 최저임금위 산하 생계비전문위원회의 회의도 노동계 불참으로 무산됐었다. 생계비전문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중에서 각각 4명이 참석한다. 최저임금을 심의할 때 기초가 되는 가구 생계비 수준과 관련한 자료를 분석·심사한다.
최저임금위 마비 사태는 이례적이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2015년과 2016년 최저임금 협상 과정에서 노사가 각각 반발해 막판에 회의장을 이탈한 전례는 있었다. 심의 시작부터 한쪽이 불참한 적은 처음”이라며 “근로자위원들이 협상테이블로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 반발이 워낙 거세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어떤 노사정 대화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더욱이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위 전원회의가 열린 19일 헌법재판소에 ‘최저임금법 헌법소원심판’을 접수하며 맞불을 놨다. 양대 노총은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서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근로자의 적정임금 및 최저임금보장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금 수준이 유사하더라도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 수당구조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달라질 수 있어 평등권도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위 측은 애가 타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할 법정시한은 오는 28일이다. 더 늦어진다고 해도 다음 달 16일을 넘길 수 없다. 최종 확정고시일이 8월 5일이고, 이날로부터 20일 전까지 최저임금위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서 정부로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파행이 계속되면 노동계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 최저임금위의 의결 정족수는 27명 위원 중 과반 출석이다. 여기에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각 3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한다. 2회 이상 참석 요구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참할 경우 ‘노사 3분의 1 정족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다만 노동계를 배제한 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는 부담스럽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두고 ‘속도조절론’과 ‘1만원 공약 이행론’이 팽팽하게 맞붙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 의견 없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졸속 심의라는 비난과 정당성 시비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최저임금 올려야 하는데, 회의를 못합니다
입력 2018-06-20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