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올게. 나가게 되면 다 막고 올게.”
18일(한국시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조현우(27·대구FC)는 스웨덴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에 출전하기 몇 시간 전 아내 이희영(30)씨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내와의 약속대로 그는 이 경기에서 눈부신 선방쇼를 펼쳤다. 국내 프로리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철벽 수문장 다비드 데 헤아처럼 골문을 든든히 지킨다고 해서 붙은 별명 ‘팔공산 대 헤아(대구+데 헤아)’가 어느덧 ‘한국의 대 헤아’가 된 순간이다.
스웨덴전은 조현우의 생애 첫 월드컵 본선 경기였다. 코칭스태프는 경기 당일 아침까지 그가 선발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월드컵 새내기 조현우는 그러나 막상 그라운드에 서자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침착하게 상대 공격수의 슈팅을 막아냈다. 그의 당당한 모습 뒤에는 피땀 섞인 노력과 국가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이 숨어있었다.
이씨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국가대표 엔트리 발표 전 올 시즌 자신의 실점(K리그 14경기 26실점)이 많아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인 월드컵 진출의 꿈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현우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아내와 지난해 8월 태어난 딸 하린에게서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이씨는 “남편이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만약 잘 안 돼도 아기 잘 키우면서 잘 살아가자’고 내게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 있는 지금도 조현우는 매일 영상통화를 통해 가족을 찾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며 축구를 시작했다는 조현우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됐다. 소속팀이 약팀이어서 비록 실점은 다소 많지만 공중볼 처리에 능숙한데다 선방수가 리그 최고 수준인 점이 발탁 배경으로 알려졌다.
조현우는 엔트리가 확정된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컨디션 조절에 최선을 다했다. 마른 체질이라 체중 관리에 특히 유의했다. 본격적인 월드컵 일정에 돌입한 뒤에는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조현우는 지난 11일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장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 앞서 아내에게 “상대가 강팀이지만 부담 갖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스웨덴전을 앞두고 훈련장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준비한 대로 즐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꾸준한 노력과 자신감을 보여준 그는 신태용 감독의 눈에 들며 드디어 스웨덴전에 출전했다. 전반 20분 마르쿠스 베리의 골대 앞 슈팅을 막아내는 등 사실상 골이 될 슛들을 두세 차례 막아냈다. 후반 페널티킥을 내주며 0대 1로 아쉽게 패했지만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 후 국제축구연맹(FIFA)은 공식 홈페이지에 조현우를 집중조명하며 “조현우가 꿈을 펼칠 기회를 잡았다.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고 평했다. 영국 BBC도 조현우를 이날 경기의 최우수선수로 선정했다.
전지훈련장으로 출국하기 전 스스로에게 “조현우 많이 컸다. 네가 어디 월드컵을 나가냐”고 했다는 조현우. 이제 그는 스웨덴전에서의 활약을 통해 한국 축구의 기둥으로 확실히 큰 셈이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팔공산 대 헤아’ 마이 컸네∼ 엔트리 걱정하던 조현우 ‘선방쇼’
입력 2018-06-19 19:56 수정 2018-06-19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