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공장 폐쇄로 뒤숭숭한 전북 군산에 화마까지 덮쳤다. 외상값 시비로 시작한 실랑이가 방화로 이어져 17일 3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다쳤다. 사고 현장인 군산시 장미동 주점 ‘7080 노래클럽’ 입구에는 18일 오후에도 불에 타다 만 목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주점 안에서 흘러나오는 흙탕물에 부서진 목재 찌꺼기가 끊임없이 쓸려나왔다. 주점 앞에 모인 주민과 상인들은 이런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소방청 중앙소방특별조사단이 감식을 위해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멀쩡한 외벽과 달리 안쪽은 온통 새카맣게 타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가득해 숨쉬기도 어려웠다. 나무 골조와 소파가 불에 타면서 유독가스가 쏟아져 나왔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현장감식을 지켜보던 주민 강모(43·여)씨는 “한국GM 군산공장 문제로 가뜩이나 지역이 뒤숭숭한데 이런 일이 생겨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주점 건물 양쪽으로는 카센터와 카페가 붙어 있었다. 차광막과 천막을 타고 불이 옮겨붙었다면 대형 화재가 될 뻔했다.
군산 장미동은 일제 강점기 목조 건물이 근대건축물로 보존된 지역이다. 화재가 난 건물도 외관은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1940년대에 나무로 만든 단층 건물이었다. 면적이 238㎡밖에 되지 않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도 없었다. 소방 설비는 소화기 3대가 전부였다. 군산소방서 관계자는 “소화기 3대 중 1대를 사용했다”고 말했지만 오래된 나무를 따라 무섭게 번지는 불길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장미동 일대에는 화재가 난 주점 같은 업소가 줄지어 있었다. 4만원에 맥주 다섯 병과 과일안주를 내어주는 이 주점들은 하나같이 낡고 오래됐다. 간판으로 화려하게 겉치장을 했지만 속은 낡은 목조건물인 경우도 많았다.
군산시 관계자는 “건축물 관리대장에 주된 구조가 목재인 곳이 장미동 일대에 68개, 월명동 전체로 치면 906개가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장미동에 있는 건축물은 281개다.
군산의 유흥업소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에는 대명동의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5명이 사망했고, 2002년에는 무려 14명이 숨진 개복동 참사가 있었다. 이번에 화재가 난 곳에서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들이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목조건물에 불이 붙는 고온단기형 화재는 10분이면 불길이 다 번지고 30분이면 건물이 주저앉는다”며 “이런 곳에 방화를 했으니 어땠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이 더 커지지 않은 게 천운이라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목조건물은 현행법상 방염처리를 한 번 하면 평생 안 해도 된다”며 “실제로는 방염 효과가 3년을 못 가는데 194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면 불이 더 크게 번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부분 카센터와 연결된 쪽문으로 탈출했다. 인근 상인 양덕원(56)씨는 “정문으로는 1명만 나왔고 세차장 옆문으로도 8∼9명이 뛰쳐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쪽문 앞에는 차량 리프트와 폐타이어가 쌓여 있었다. 주방으로 난 비상구에도 비좁은 통로에 기름통과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일부 시민이 문을 열고 들어가 무대 위에 쓰러져 있던 부상자들을 구해내지 않았다면 희생자는 더 늘어났을 수 있다.
화재가 난 시간은 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때였다. 주점 맞은편에 섬 주민들이 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개야도 어촌계 물김운반협회 사무실이 있었다. 방화범 이모(55)씨도 이 사무실 앞에 한 시간여 앉아 있다가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이택현 김용권 강경루 기자 alley@kmib.co.kr
2000년 대명동, 2002년 개복동, 2018년 장미동, 되풀이되는 군산 참사
입력 2018-06-18 18:35 수정 2018-06-19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