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미 4년 전에 한국 경제의 ‘4대 그룹 의존증’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걱정만 했을 뿐 적절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금도 3% 경제성장률 달성만 강조할 뿐 ‘반도체 착시효과’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고용시장 상황은 조금씩 나빠졌고, 결국 더는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고용 쇼크’에 직면했다. 특히 한국 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30·40대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도 치솟고 있다. ‘정책 타이밍’을 놓친 정부의 책임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4대 그룹 의존증…분석만 하고 ‘쉬쉬’
2014년 초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경제 집중도를 분석하겠다고 공언했다. 두 회사에 기대는 경제구조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실태를 알아보겠다는 취지였다.
분석 결과는 심각했다. 2013년 기준으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3%, 12%에 달했다. 4대 그룹(삼성·현대차·LG·SK그룹)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분석 결과는 공포되지 않았다. 되레 박근혜정부는 ‘대기업 낙수효과’를 내세우며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을 고수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덩치를 키웠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도 늘었다. 2013년 6월 박근혜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입법을 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같은 해 10월 관련 시행령에서 여러 가지 예외조항을 신설해 사실상 규제를 낮췄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17일 “박근혜정부 후반기에 들어서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면서 “대기업 조사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이런 정책들이 쌓이면서 문재인정부 들어 ‘반도체 착시효과’가 불거지고 있다. 반도체를 빼면 모든 산업에서 위기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반면 정부는 3%대 성장이라는 ‘겉보기 등급’만을 강조한 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경제팀의 한 관계자는 “지금 경제팀에서 금기어는 최저임금 인상 영향, 반도체 착시효과”라며 “반도체 착시효과를 인정하지 못하니 에둘러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과 질 모두 무너진 고용시장
통계청에 따르면 올 1∼5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월평균 14만9000명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7만2000명 감소를 기록한 뒤로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37만2000명)과 비교해 증가폭이 절반 이상 줄었다.
취업자 수 감소가 경제활동인구의 핵심인 30·40대 일자리에 집중되는 점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달 40대 취업자 수는 669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8만8000명 줄었다. 2015년 11월부터 31개월째 계속된 감소세로 역대 최장이다. 30대 취업자 수 역시 8개월째 내리막이다.
청년 고용도 악화일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층(15∼24세) 실업률은 올해 1분기 10.2%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11.1%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OECD 평균 실업률이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인 데 비해 한국은 지난해부터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5개 회원국 중 최근 1년 새 청년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은 나라는 한국 칠레 스위스 3곳이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주축 세대의 감소’ ‘청년 실업률 증가’ 등 질적인 고용문제 악화는 정부 판단보다 경기가 크게 안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3% 성장만 강조한 채 경기가 둔화 국면에 들어서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정부, ‘4대그룹 의존증’ 진단하고도 4년 허송세월
입력 2018-06-1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