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큰 손’인 외국인투자자의 행보가 심상찮다. 코스피시장에서 4개월 연속으로 돈을 빼간 외국인은 이달에도 6454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 순매도 규모만 2조8000억원에 이른다. 돌아오지 않는 외국인을 기다리는 사이 코스피지수는 2400선까지 가라앉았다.
금융투자업계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빅 이벤트’가 끝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예상보다 긴축적이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행보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재발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외국인 자금 유출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그나마 한국 상황은 나은 편이다. 1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7∼13일 북미 주식시장에 신규 자금이 97억 달러(약 10조6600억원)나 유입됐다. 13주 만의 최대 규모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신흥국 시장에서 돈을 빼 미국 시장에 집어넣는 ‘머니 무브’(투자자금 이동)가 뚜렷했다. 반대급부로 최근 2개월간 한국 증시에서 11억6000만 달러가 유출됐다. 인도(18억 달러) 대만(19억7000만 달러) 태국(24억3600만 달러) 증시의 유출액은 이보다 더 컸다.
이런 현상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 투자를 늘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연준은 올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더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이는 달러화 가치 강세를 부채질하고,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신흥국 주식시장 투자심리에 부정적이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지난 4월 1050원선을 위협했던 원·달러 환율은 어느새 1100원선에 육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지표 흐름을 ‘위기의 전조’로 해석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연준의 긴축 행보는 그만큼 미국과 글로벌 경기가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 불안이 도미노처럼 전염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6월 금리인상과 시사점’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경제 기초체력이 양호해 외국인 자금 유출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도 “신흥국 위기가 경제 규모가 큰 신흥국으로 전이될 경우 국내 및 세계경제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악재는 또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재발은 한국 증시에 걸림돌이다. 여기에다 오는 2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정례회의가 예정돼 있다. 국제유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 외국인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코스피지수는 2분기 실적 시즌에 접어들게 되는데 삼성전자의 실적 추정치는 갤럭시S9 판매 부진 등의 이유로 하향 조정된 상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코스피가 더 하락하기보다 ‘바닥 다지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NH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은 “IT하드웨어, 반도체, 증권, 은행, 면세점 등의 2분기 실적은 양호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정을 겪은 코스피의 가격 매력도도 높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KB증권 김영환 연구원은 “코스피가 추가 조정을 받아 2월의 저점보다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며 “버텨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증시 큰손 외국인들, 4개월 간 돈 뺐다
입력 2018-06-17 18:48 수정 2018-06-17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