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영(35)씨는 서울 관악구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텀블러를 내밀며 “할인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직원은 “우리 매장은 해당 되지 않는다”며 1회용 종이컵을 쓸 때와 똑같은 가격을 매겼다. 김씨는 “이 업체 매장에 텀블러를 가져가 사용하면 할인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굳이 챙겨갔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커피전문점 매장에서도 직원은 이경진(40)씨에게 주문한 아이스라테를 가지고 나가는지 묻지 않았다. 아이스라테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왔다. 이씨는 매장에서 음료를 마신 뒤 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쓰레기통에는 플라스틱 컵이 쌓여 있었다.
이 패스트푸드 업체와 커피전문점은 지난달 24일 환경부와 협약을 체결,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면 최대 400원까지 할인해주기로 했다. 매장 내에선 일회용 컵 대신 머그컵이나 유리잔을 우선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환경부 협약에는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파스쿠찌, 이디야, 빽다방, 크리스피 크림 도넛, 탐앤탐스커피, 투썸플레이스,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커피빈앤티리프, 커피베이, 카페베네, 할리스커피, 디초콜릿커피, 디초콜릿커피앤드 커피전문점 16곳과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KFC, 파파이스 패스트푸드점 5곳이 참여했다.
국민일보가 17일 협약에 참여한 업체들의 매장 10여 곳을 방문한 결과 머그컵 사용을 권하거나 개인 텀블러 사용 여부를 묻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일부 매장에는 텀블러 사용 시 할인 여부를 알리는 안내판도 없었다.
매장 관계자들은 협약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서초구의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업체 가맹점주 서모(48)씨는 “머그컵이나 유리잔 사용이 늘면 이를 세척할 기계를 따로 구입하거나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또 “컵을 새로 사야 하는 비용이나 분실 또는 파손 될 경우의 비용도 모두 가맹점주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선호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소비자들도 일회용 컵에 이미 익숙해 있다. 마포구의 한 커피전문점 매니저 심모(38)씨는 “머그컵 사용을 권하다가 매번 거절당해 아예 묻기를 포기했다”며 “몇 백원 할인을 받으려고 텀블러를 휴대하고 다니는 고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협약 이행실태를 정기·수시로 점검하고 매장별 협약 이행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효율적인 점검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경각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정부나 본사 차원에서 가맹점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다회용 컵 사용을 정착시키는 것도 방법”이라면서도 “법을 어기고 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업체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강력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94년에 재정된 자원재활용법에 따르면 면적이 33㎡가 넘는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에게 일회용 컵을 제공하면 2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릴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여수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팀장은 “매장에 사용한 일회용 컵을 가져가면 돌려받는 ‘컵 보증금제도’를 내년에 시행할 예정인데 이를 정착시켜 일회용 컵의 회수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카페 플라스틱 컵 줄이기 ‘무용지물’
입력 2018-06-18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