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매년 “일자리 늘리겠다” 약속했지만 4년간 0.12%(7670개) 늘렸다

입력 2018-06-18 04:03

한국 경제의 대기업과 반도체 중심 성장구조가 고용시장에 ‘독(毒)’으로 작용했다.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는 원활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특히 대기업과 반도체 산업에서 대규모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아니더라도 ‘고용 쇼크’는 피할 수 없는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끊어진 ‘중소기업 성장 사다리’ 복원,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 경제와 산업의 ‘틀’을 바꿔야만 중장기적 고용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반도체 산업의 취업자 수는 12만4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만40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에서 취업자 수는 28만1000명 증가했다. 반도체 산업의 일자리 창출 기여도(전체 산업의 취업자 수 증가분 중 반도체 증가분 비중)는 4.9%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도체는 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한국의 수출과 투자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0% 안팎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 대비 15.8% 증가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대표적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선전이 큰 몫을 했다.

반도체 호황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화기기를 중심으로 생산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고용 창출효과가 낮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반도체를 10억원 수출할 때 취업유발인원은 3.6명에 그친다. 전체 산업의 평균(12.5명)보다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또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 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곳에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반도체 호황은 일자리 측면에서만 보면 남의 나라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다.

여기에다 4대 그룹(삼성·현대차·LG·SK그룹)을 포함해 대기업의 고용 창출 여력도 떨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기업집단 정보공개 시스템 ‘오프니’에 따르면 4대 그룹의 종업원 수는 2014년 4월 64만1487명에서 4년이 지난 올해 5월 64만9157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4대 그룹은 매년 정부에 투자와 고용 확대를 약속하지만 말뿐인 것이다.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들도 이미 몸집이 커질 만큼 커져서 공격적 투자나 인력 확충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도 안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 국내 대기업의 가장 큰 투자를 꼽으라면 현대차의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입 정도”라며 “국내 대기업들은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올해를 기점으로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한국 경제가 그동안 누리던 ‘반도체 착시효과’마저 사라지게 된다. 수출 대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 통상 압박에 직면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반도체에 의존하는 현재 경제 구조로는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다고 본다. 한양대 경제학부 하준경 교수는 “반도체 등 수출 위주의 대기업만 바라봐서는 고용시장이 개선될 수 없다”면서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 혁파에 힘쓰고 반도체 호황 이후의 경제 성장동력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을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