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메스기날레니(감사합니다).”
성도 80여명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두 참전용사가 조용히 일어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왼쪽 가슴에 달린 훈장들이 반짝거렸다.
경기도 부천 길과빛교회(배철 목사)는 17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멜레세 테세마(89)씨와 에스티파노스 게브레메스켈(88)씨를 초청해 위로예배를 가졌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때 전투병력을 파견한 16개국 중 하나다. 당시 셀라시에 황제는 자신의 친위대를 직접 ‘강뉴(Kagnew)부대’로 재편성해 5차례 6039명을 파견했다. 강뉴는 ‘초전에 상대의 기를 꺾는다’는 뜻의 암하라어(에티오피아 공용어)다. 강뉴부대는 강원도 화천 일대에서 250여 차례 전투에 참여해 모두 승리한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 말기에는 월급을 모아 전쟁고아를 돌보는 기관도 세웠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전용사들은 셀라시에 정권의 부역자로 몰렸다. 재산을 몰수당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90년대에 들어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정치·경제적 이유로 예우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NGO 따뜻한하루(김광일 대표)가 생존한 170여명의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생활비를 전달했다. 경북 포항 영포교회(김진동 목사)는 테세마씨와 게브레메스켈씨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길과빛교회는 성도들이 매달 성금을 모으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 13일 입국한 두 참전용사는 서울 전쟁기념관과 제주도, 부산 유엔기념공원 등을 돌아본 뒤 26일 출국한다.
테세마씨는 이날 예배에서 “52년 5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 총을 메고 한국행 배에 오르던 순간부터 다시 돌아오던 때까지 한순간도 잊을 수 없다”며 “아무것도 없던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만들어낸 한국인들을 존경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게브레메스켈씨도 “최근 한국에 평화와 통일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는 사실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강뉴의 시선에는 항상 한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예배가 끝날 무렵에는 기록영상을 시청했다. 성도들은 한국전쟁 당시 입은 부상을 평생 회복하지 못한 채 누워있거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강뉴부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코를 훌쩍였다. 두 참전용사도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예배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성도 김태준(40)씨는 “에티오피아는 단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인 줄만 알았다”며 “알지도 못하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그들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성호(63)씨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한씨는 “참전용사들께 뭐라도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다”며 “그들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철 목사는 “두 참전용사를 보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호국보훈의 달 6월에만 이들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매달 성금을 모아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따뜻한하루는 길과빛교회 등에서 모인 성금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170여명에게 직접 전달한다. 1인당 약 5만원 수준이다. 김광일 대표는 “한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예우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국교회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02-773-6582).
부천=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 전한 ‘특별한 감사’
입력 2018-06-18 00:01